복도에서 또 그 애를 만났어. 지난번에 칼손한테 개미 됐다고 놀렸던 애.
이번에도 칼손을 보더니 웃으면서 그러더라. 요새도 물려 있냐고.
칼손은 또 웃었어. 손에 든 것도 없는데 주먹을 꽉 쥐고.
근데 이번엔 불나방이 옆에 있었어.
불나방이 걸음을 멈췄어. 그리고 그 애를 봤어.
늘 웃던 얼굴이 아니었어.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정색한 얼굴.
그리고 한 마디 했어.
불나방 그거 하나도 안 웃겨.
신기한 게 불나방 목소리가 하나도 안 컸어. 오히려 평소보다 작고 느렸어.
불나방은 원래 시끄러운 애잖아. 화내면 소리 지를 줄 알았어.
근데 그 작은 목소리가 더 무서웠어.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거든.
그 애가 당황하더니 미안하다고 하고 갔어. 장난이었다고.
그 애가 가고 나서 칼손이 불나방을 한참 봤어.
그러더니 그러더라. 고마운데 좀 놀랐다고. 불나방이 그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봤다고.
불나방이 그러더라. 자기도 처음이래. 근데 칼손 주먹 쥐는 거 보고 참을 수가 없었대.
칼손 나는 화를 못 내니까.
생각해보면 칼손은 화를 못 내는 애야. 남 눈치 보느라.
그래서 놀림을 받아도 웃어. 속으로만 아프고.
근데 불나방이 대신 화를 내줬어. 칼손이 못 하는 걸 대신 해준 거라니까.
내 대신 화내주는 친구가 있으면 나는 화 안 내도 되잖아. 그게 얼마나 큰 건지 칼손 얼굴 보니까 알겠더라.
돌부처 다음엔 나도 화낼게. 무표정으로.
돌부처 무표정은 화낸 건지 아닌지 아무도 모를 거라서 다들 웃었어.
너도 화를 못 내서 속으로만 아프면 그거 네가 약해서가 아니야. 그런 성격인 거거든.
대신 화내줄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 옆에 있어. 동아리방엔 처음으로 정색한 불나방이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