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을 본 친구가 그날은 자기 얘기를 길게 하네요. 평소에는 두세 마디로 끝내던 사람인데요.
말이 이어지는 동안 잔을 한 번도 안 들더라고요.
처음 한두 마디는 늘 하던 것처럼 짧았어요.
그런데 제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니까 한 줄이 더 붙는걸요. 그러고 또 붙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멈추지를 않더라고요. 한참 눌러뒀던 게 나오는 거겠지요.
오래 말하지 않은 사람은 문이 열리면 한 번에 다 나온다. 그동안 나올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제가 잘한 게 있다면 안 끊은 거겠지요.
중간에 아, 나도 그런 적 있어, 하고 들어갈 데가 몇 번 있었어요. 그걸 참았어요. 한 번 끼면 그 흐름이 끊기고 다시 이어지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다 듣고 나서 뭘 말해야 하나 싶었는데요.
그냥 힘들었겠다고만 했네요. 방법을 말할 자리가 아니었고요. 그 친구도 방법을 물으러 온 게 아니었겠고요.
그다음 날 연락이 왔는데 좀 머쓱해하더라고요.
어제 말이 너무 길었다고요. 저는 아니라고 하고 다른 얘기로 넘어갔어요. 그 어색함까지 받아주는 게 그날 밤의 마무리인 셈이지요.
그 뒤로 다시 짧아졌더라고요.
원래대로 두세 마디로 돌아갔어요. 그날이 특별했던 거고, 그런 밤은 자주 안 오는 거겠고요. 저는 그 한 번으로 그 친구를 좀 더 알게 됐고요.
돌아보면 저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어요.
평소에는 안 하던 얘기를 한참 했고, 다음 날 부끄러워서 연락을 못 했습니다. 그때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얘기를 걸어줬고요. 그게 고마웠던 게 기억나서 저도 그렇게 한 겁니다.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고 있는 셈이네요.
길게 말할 수 있는 밤은 자주 오지 않는걸요.
그런 밤이 오면 듣는 쪽은 그냥 듣고 있으면 됩니다. 오늘 누가 평소보다 길게 말했다면, 끊지 않으신 것만으로 할 일은 하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