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카페에 갔어요. 친구가 너는 뭐 마셔, 하고 물었지요.
저는 메뉴판 대신 친구 얼굴을 보며 너랑 같은 거, 라고 대답했네요. 그러고 나서 조금 놀랐어요. 제가 뭘 마시고 싶은지 생각조차 안 했더라고요.
오래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뭘 먹을지, 어디 갈지, 무슨 옷을 입을지 남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맞추는 게 편했지요. 그러면 부딪힐 일이 없으니까요. 상대가 좋아하면 저도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날 집에 와서 생각해봤어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였지, 하고요. 이상하게 바로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어릴 땐 분명 좋아하는 게 많았는데요. 남의 기대에 맞추다 보니 제 취향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 있었던 거군요.
남에게 맞추는 동안, 내 취향은 아무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난다.
요즘 나답게 살라는 말을 자주 듣지요.
그런데 그 말이 저한텐 좀 막막했어요. 나다운 게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나답게 살지 싶어서요. 그 말 자체가 또 하나의 기대처럼 느껴지기도 했네요.
그래서 아주 작은 것부터 해보기로 했어요.
혼자 있을 때만큼은 남 생각 안 하고 고르는 거예요. 편의점에서 늘 사던 것 말고 끌리는 걸 집어보고, 산책할 때 가고 싶은 쪽으로 가보고요. 처음엔 그것도 어색하더라고요. 고르는 근육이 약해져 있었던 거겠지요.
몇 주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하나씩 떠올랐어요.
저는 유자차보다 보리차를 좋아했고, 큰길보다 골목을 좋아했어요. 비 오는 날 창가 자리를 좋아하는 것도 다시 알게 됐지요. 다 원래 있던 것들이었네요. 잊은 게 아니라 잠깐 덮여 있었던 거였어요.
다음에 그 친구와 카페에 갔을 때는 메뉴판을 먼저 봤어요.
그리고 따뜻한 보리차를 골랐지요. 친구가 그런 것도 마셔? 하고 웃었어요. 저도 웃었고요. 작은 선택 하나였는데 이상하게 제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네요.
나답게 사는 게 거창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작은 것 하나를 내 마음대로 고르는 데서 시작하는 거겠지요. 남에게 맞춰온 시간이 길었다면 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래도 천천히 돌아오면 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