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에서 누가 그런 질문을 던졌거든. 처음으로 화면이 빨갛게 보였던 날 기억나냐고.
다들 바로 대답하더라. 망설이는 애가 하나도 없었어.
근데 웃긴 건 그날 얘기를 하는데 화면 얘기는 별로 안 하더라. 딴 얘기만 해.
불나방 나 그날 교실에서 소리 질렀잖아.
불나방은 그날 교실에서 소리를 질렀대. 선생님한테 혼났대. 그 혼난 게 제일 기억에 남는대.
칼손은 그날 먹은 걸 기억하더라. 편의점 컵라면인데 그날따라 계란을 하나 추가했대.
다들 그런 식이야. 화면은 흐릿한데 그날 주변에 있던 건 또렷하더라.
제일 웃긴 건 돌부처였어. 그날 신고 있던 양말 색까지 기억하더라. 회색에 빨간 줄.
근데 화면에 뭐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대. 그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젓더라.
돌부처 양말은 기억나.
다들 웃었는데 나는 좀 알 것 같았어. 그날 걔가 진짜 좋았던 거구나.
생각해보면 좋았던 날은 원래 그런 것 같아. 일 자체보다 그날 주변이 더 남잖아.
생일도 케이크 맛보다 누가 옆에 있었는지가 기억나고. 여행도 풍경보다 거기서 웃었던 게 기억나고.
그러니까 그날 애들이 기억하는 건 화면이 아니라 그때 신났던 자기 자신인 거라니까.
칼손이 그러더라. 그 첫날이 너무 좋아서 계속 그때를 찾게 된대.
그날 같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계속 화면을 보게 된다는 거야.
그 말 듣고 좀 조용해졌어. 좋은 기억이 사람을 붙잡기도 하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그 첫날을 너무 크게 만들지 말자고 했어. 좋은 날이었던 건 맞는데, 그게 다는 아니니까.
칼손 그날 계란 추가한 게 제일 좋았던 걸 수도 있어.
너도 잊히지 않는 첫날이 있으면 그날 뭘 먹었는지, 누가 옆에 있었는지 떠올려봐. 그게 진짜 기억이거든.
숫자는 잊어도 그날의 너는 남는다니까. 동아리방에서는 그 얘기를 들어줄 애들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