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한테 처음으로 뭘 부탁하셨거든. 심부름은 늘 시키시는 건데 이건 달랐어.
해줄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 그게 처음이었다니까.
시키시면 그냥 하는 거잖아. 하기 싫어도 하는 거고.
근데 부탁이면 내가 정하는 게 되는 거고. 그러니까 거절할 수 있는 거잖아.
그 차이가 되게 컸다니까. 같은 일인데 완전히 다른 일이 되는 거고.
칼손 저희 집은 다 시키세요.
웃긴 게 부탁이니까 더 열심히 했거든. 시키셨으면 대충 했을 거고.
심부름이 하기 싫었던 이유가 안 끝나는 거였는데, 이건 끝이 확실했어. 부탁이니까 다 하고 나면 끝이잖아.
내가 정했으니까 내가 끝내는 것도 되는 거라니까.
이거 알고 나서 방 생각이 났거든. 나는 애들한테 시키는 걸 안 하고 부탁을 한다고 썼잖아.
아무도 안 정해준 일이 제일 확실한 내 일이라고도 썼고. 그게 시키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거였고.
집에서 배운 게 아니었던 거라니까. 집에서는 늘 시키는 쪽이었으니까.
돌부처 부탁이면 하게 되지.
왜 이번에 부탁하셨는지 생각해봤거든. 아마 내용이 좀 무거웠던 것 같고.
가벼운 건 시키면 되는데 무거운 건 부탁해야 되는 거잖아. 그게 구분되어 있는 거고.
그러면 엄마도 그 구분을 하고 계셨던 거라니까. 나는 그걸 몰랐던 거고.
그 구분을 언제부터 하셨는지는 안 여쭤봤거든. 물어보면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냥 뒀고.
다음에 한 번 더 부탁하시면 그때 세볼 거라니까. 두 번이면 구분이 보일 거고.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심부름이 왜 하기 싫은지도 한참 몰랐거든. 이름 붙이고 나서야 알았고.
근데 부탁이면 안 하기 싫더라. 그게 제일 큰 차이고.
그래서 방에서는 계속 부탁만 할 거라니까. 시키는 건 안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