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동아리방에 상자를 하나 들고 왔어. 헤드폰 상자였어.
용돈 모아서 샀대. 몇 달 동안. 버스비 아낀 동전 지갑도 거기 보탰대.
칼손이 처음으로 산 비싼 물건이래.
칼손 이거 사려고 진짜 오래 모았어.
근데 칼손이 그 헤드폰을 안 쓰더라. 상자째 들고만 다녀.
석 달째래. 아까워서 못 쓰겠대.
불나방 새 운동화 얘기랑 똑같았어. 다들 웃었어. 너도 그러냐고.
하나 신기한 게 있었어. 칼손이 상자 안에 영수증을 접어서 넣어뒀더라.
가끔 상자를 열면 헤드폰이 아니라 영수증을 꺼내서 읽는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칼손이 그러더라. 영수증 보면 자기가 해낸 게 보인대.
몇 달 동안 아끼고 모은 게 그 종이 한 장에 다 들어 있대.
생각해보면 칼손은 요새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많았잖아.
근데 이 헤드폰은 칼손이 혼자 해낸 거야. 버스 안 타고 걷고, 동전 하나씩 넣고, 몇 달 기다리고.
그러니까 그 영수증은 칼손이 해낸 증거였던 거라니까. 그래서 자꾸 꺼내 보는 거고.
돌부처 버틴 영수증이네.
불나방이 칼손한테 그랬어. 자기 운동화 신은 날 흙탕물 묻었어도 좋았다고. 너도 써보라고.
칼손이 한참 고민하더니 상자를 열었어. 헤드폰을 처음으로 꺼냈어.
머리에 쓰고 노래를 틀었어. 칼손 표정이 확 바뀌었어.
눈 감고 한참 들었어. 그리고 그러더라. 이거 사길 진짜 잘했대.
칼손이 헤드폰으로 처음 들은 노래가 뭔지 물어봤어.
일요일 밤마다 돌부처가 단톡방에 제목만 올리던 노래 중 하나래. 맨 처음 올라왔던 거.
그 노래를 좋은 헤드폰으로 들으니까 처음 듣는 노래 같았대. 소리가 하나하나 다 들렸대.
돌부처가 그 말 듣고 처음으로 자기가 고른 노래 얘기를 길게 했어. 그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헤드폰 하나가 돌부처 말문까지 열어준 거라니까.
너도 큰맘 먹고 산 게 있으면 아끼지 말고 써봐. 쓰라고 산 거잖아.
그리고 영수증은 버리지 마. 네가 해낸 증거니까. 칼손은 요새 동아리방에서 헤드폰 쓰고 있어. 영수증은 아직 상자에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