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씻고 나오는데 발이 시렸어요. 바닥이 차갑더라고요.
조금 망설이다 보일러 스위치를 눌렀어요. 아직 가을인데 벌써 트나 싶었지만요.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들리기 시작했네요.
보일러를 처음 트는 건 늘 망설여져요.
트는 순간 겨울이 온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조금만 더 버텨볼까 하다가 결국 트게 되지요. 엄마는 이미 전기장판을 꺼내셨다던데, 저는 이제야 겨울 준비를 시작한 셈이네요.
보일러를 켜고 한참 뒤에 맨발로 거실을 걸어봤어요.
대부분은 아직 차가웠는데 소파 앞 한 뼘이 먼저 따뜻하더라고요. 발바닥으로 그 자리를 찾아내서 쪼그려 앉았어요. 그 따뜻함이 발끝부터 천천히 올라왔지요.
바닥이 데워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집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처음 트는 보일러는 냄새가 조금 나요.
먼지 탄 냄새 같은 거요. 그 냄새가 나면 겨울이 시작됐다는 게 실감 나지요. 어릴 때도 첫 난방 날이면 그 냄새가 났던 것 같아요. 그때는 엄마가 이불을 바닥에 깔아주셨고요.
그날 저도 이불을 바닥에 깔았어요.
따뜻해진 자리 위에 이불을 펴고 그 위에 누웠지요. 등이 따끈해지니까 하루의 피로가 조금씩 녹더라고요. 창밖에선 바람 소리가 들렸고요. 바깥은 춥고 안은 따뜻한 게 묘하게 아늑했어요.
보일러를 틀고 나서 창가 화분도 안쪽으로 조금 옮겼어요.
밤이면 창가가 제일 먼저 차가워지니까요. 얼마 전 분갈이한 화분에서 새 잎이 막 올라오고 있었거든요. 그 연한 잎이 찬 유리에 닿지 않게 한 뼘쯤 떼어놓았지요. 집 안의 작은 것들도 같이 겨울 채비를 하는 셈이네요.
생각해보면 보일러 첫 가동은 겨울을 맞는 작은 의식 같아요.
선풍기를 넣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고, 보일러를 트는 것. 그렇게 하나씩 하면서 계절을 받아들이는 거지요.
바닥이 다 데워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그 기다리는 시간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오늘 밤은 먼저 따뜻해진 한 뼘을 찾아 앉아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