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노트를 펴고 오늘 일을 적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장이었지요.
몇 달 동안 쓰던 노트였어요. 그날그날 생각, 할 일, 좋았던 문장 같은 걸 적던 노트였네요. 마지막 줄에 무슨 말을 쓸까 한참 고민했어요.
결국 이렇게 적었어요. 끝까지 썼다.
그리고 노트를 덮으려다 첫 장을 펼쳐봤지요. 첫 줄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이번엔 끝까지 써보자. 몇 달 전의 제가 쓴 다짐이었어요. 그 다짐을 지킨 거였네요. 혼자 조용히 웃었어요.
예전엔 노트를 끝까지 쓴 적이 거의 없었어요.
새 노트를 사면 처음 몇 장은 정성껏 쓰지요. 그러다 바빠지면 손이 안 가고, 결국 반도 못 채우고 서랍에 들어갔어요. 서랍 안에 그런 노트가 몇 권이나 있었네요. 그래서 이번엔 꼭 끝까지 써보고 싶었어요.
끝까지 쓴 노트 한 권에는, 버텨낸 날들이 한 장씩 차곡차곡 들어 있다.
덮기 전에 처음부터 천천히 넘겨봤어요.
글씨가 날마다 달랐지요. 반듯한 날도 있었고, 삐뚤삐뚤 휘갈긴 날도 있었어요. 힘들었던 날은 한 줄만 적혀 있기도 했고요. 그 한 줄들이 오히려 마음에 남았어요. 그날도 어쨌든 노트를 펼쳤다는 거니까요.
다 쓴 노트는 처음보다 조금 두꺼워져 있었어요.
종이에 잉크가 배어서 그렇겠지요. 손에 쥐어보니 묵직했어요. 몇 달의 시간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무게 같았네요.
쇼펜하우어는 평생 노트에 생각을 적어 남겼다고 하지요.
거창한 철학이 아니어도 하루를 적는 일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적어두지 않으면 금방 흘러가 버리니까 그렇겠지요.
끝까지 쓴 노트 한 권에는 버틴 날들이 한 장씩 들어 있지요.
오늘은 다 채운 무언가를 한 번 쓰다듬어 줘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