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서류를 내야 했거든. 학기마다 한 번 내는 거야.
칸이 몇 개 있는데 거기 뭘 써야 될지 모르겠더라.
제일 어려운 게 활동 내용 칸이야. 세 줄이 있는데 한 줄도 못 채우겠더라.
우리가 하는 게 뭐냐면 앉아 있는 거잖아. 그걸 어떻게 쓰냐니까.
세 줄을 다 채운 적이 한 번도 없어. 매번 한 줄 반쯤 쓰고 냈고.
불나방 뭐라고 쓰세요?
한참 붙잡고 있다가 알겠더라. 우리가 쓸 게 없는 게 아니라 칸이 안 맞는 거였어.
뭘 배웠는지 쓰라는 칸이고, 뭘 만들었는지 쓰라는 칸이고. 우리는 그걸 안 하니까.
서류는 하는 동아리를 전제로 만들어진 거잖아. 앉아 있는 데는 쓸 칸이 없는 거고.
그래도 내야 되니까 뭐라도 썼거든. 주식 얘기 같이 하는 동아리, 이렇게.
축제 문구 때 쓴 거랑 같은 걸 썼어. 재미없고 틀린 말도 아닌 걸로.
애들이 써온 문구를 쓸까 하다가 안 썼다니까. 그건 우리끼리 쓰는 거고 서류에 나가면 설명을 해야 되니까.
돌부처 서류는 서류지.
근데 이게 좀 걸리는 게 있거든. 매 학기 그렇게 쓰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싶고.
말이 먼저 오고 뜻이 나중에 온다고 내가 계속 썼잖아. 서류에 쓴 말이 우리를 바꿀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서류에 쓴 문구는 방에서는 절대 안 쓴다니까. 그건 밖으로만 나가는 거고.
그리고 빈칸 남긴 서류가 반려된 적은 한 번도 없거든. 아무도 안 보는 거고.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서류도 잘 못 쓰거든. 매번 한 줄 반쯤 쓰고 내고.
근데 못 채우는 게 우리 잘못이 아니더라. 칸이 안 맞는 거고.
빈칸이 남아 있는 게 오히려 맞는 거라니까. 억지로 채우면 그게 우리가 아니게 되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