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은 새로운 사람 만나면 꼭 물어보는 게 있거든. 언제 시작했냐고.
주식 얘기 나오면 거의 첫 질문이야. 몇 살 때 시작했냐, 얼마나 됐냐.
처음엔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줄 알았어. 근데 대답 듣고 나서 표정이 늘 좀 어두워지더라.
불나방 걔는 중학생 때부터 했대. 나는 뭐 했냐.
한번은 불나방 폰을 같이 보다가 메모장을 봤는데 좀 놀랐어.
아는 사람들 이름이 쭉 있고 옆에 나이가 적혀 있더라. 그 사람이 시작한 나이.
자기 이름도 맨 밑에 있었어. 제일 늦은 숫자로.
그거 보고 알았지. 얘는 이걸 계속 세고 있었구나.
그래서 물어봤어. 늦으면 뭐가 문제냐고.
걔가 그러더라. 남들은 벌써 저만큼 가 있는데 자기만 출발선에 있는 것 같대.
빨리 따라잡아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급하대. 그래서 자꾸 무리하게 된대.
그 말 듣고 좀 무서웠어. 급한 마음이 제일 위험한 거잖아.
칼손 나는 너무 빨리 시작해서 후회하는데.
그 말에 칼손이 끼어들었어. 자기는 일찍 시작해서 후회한대.
아무것도 모를 때 시작해서 이것저것 겪었대. 좀 늦게 시작했으면 덜 아팠을 것 같대.
불나방이 그 말 듣고 멍해지더라. 자기가 부러워하던 걸 후회하는 애가 바로 옆에 있었던 거야.
같은 걸 두고 한 명은 늦어서 조급하고 한 명은 빨라서 후회하는 거라니까.
생각해보면 늦었다는 건 남의 시계로 봤을 때 얘기잖아.
내 시계로 보면 지금이 내 시작인 거야. 남이 언제 시작했든 그건 그 사람 시계고.
불나방 목록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각자 자기 시계로 사는 거거든. 비교하는 순간 내 시계가 고장 나는 거고.
돌부처 나는 시계 안 봐.
그날 불나방이 메모장 목록을 지웠어. 내가 시킨 건 아니야. 칼손 얘기 듣고 혼자 지웠대.
너도 남들보다 늦었다고 조급하면 그 목록부터 지워봐. 동아리방엔 시계가 하나도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