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 서 있었어요. 문 옆 손잡이를 잡고 창밖을 봤지요.
터널에 들어서자 어두운 창에 제 얼굴이 떠올랐어요. 역에 들어서면 사라지고, 다시 터널에 들어서면 나타나고요. 세 번째 터널쯤에서야 알았네요. 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어요.
그 표정을 하고 있는 줄 몰랐어요.
하루 종일 그렇게 다녔을까 싶었지요. 회의 때도, 점심 먹을 때도요. 거울을 볼 땐 늘 표정을 고치고 보니까 진짜 얼굴을 볼 일이 없었어요. 지하철 창이 그걸 몰래 보여준 거예요.
지하철 창은 이상한 거울이에요.
밝은 데선 안 보이다가 어두운 터널에서만 얼굴을 비추지요. 그것도 흐릿하게요. 그 흐릿한 얼굴이 오히려 더 정직해 보였어요. 꾸미지 않은 하루 끝의 얼굴이었던 거겠지요.
어두운 터널의 창은, 하루를 버틴 내 진짜 얼굴을 잠깐 보여준다.
고개를 돌려 다른 창들도 봤어요.
창마다 지친 얼굴들이 비쳐 있었지요. 눈을 감은 사람, 휴대폰을 보는 사람, 멍하니 서 있는 사람이요. 다들 비슷하게 피곤해 보였어요. 그걸 보니 저만 지친 게 아니구나 싶어 조금 위로가 됐네요.
그다음 터널에서 일부러 미간을 펴봤어요.
어깨도 조금 내리고요. 창에 비친 얼굴이 아까보다 한결 나아 보였지요. 표정 하나 바꿨을 뿐인데 몸도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어요. 얼굴이 마음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마음이 얼굴을 따라오기도 하나 봐요.
제 역에 도착해서 문이 열렸어요.
창에 비친 얼굴이 밝은 승강장 불빛 속으로 사라졌지요. 내리면서 조금 웃었어요. 오늘 하루도 어쨌든 끝까지 왔구나 싶어서요.
창에 비친 지친 얼굴도 오늘을 끝까지 버틴 얼굴이겠지요.
다음 터널에선 그 얼굴에게 살짝 웃어줘 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