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저녁, 퇴근한 사람들이 들어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 가네요. 뭘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텅 빈 얼굴로요. 하루를 다 썼는데 정작 자기 몫은 없는 그런 저녁이요.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나서 오히려 공허해지는 경험. 이건 일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더라고요. 조금 다른 데서 오는걸요.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해야 할 일과 남의 요구에 쓰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한 조각도 안 남는 거죠. 몸은 바빴는데 나는 어디에도 없었던 셈이에요. 그 부재가 저녁의 공허로 돌아오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텅 빈 느낌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온종일 나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는 신호에 가까워요. 채워야 할 게 있는데 못 채운 거네요.
사람은 종일 무언가에 쫓기다가, 문득 멈추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비어 있음을 느낀다.
이 말이 정확하더라고요. 쫓기는 동안엔 몰랐다가 멈추는 순간 공허가 밀려오는 거죠. 그건 하루가 나빴다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나를 위한 순간이 없었다는 뜻이겠지요.
공허를 큰 걸로 메우려 하면 오히려 더 허해지더라고요. 화려한 걸 찾을수록 끝난 뒤가 더 텅 비니까요. 정작 마음을 채우는 건 작아도 온전히 내 것인 시간이겠지요. 크기가 아니라 그게 나를 향해 있느냐가 중요한걸요. 남을 위한 큰 하루보다, 나를 위한 작은 십 분이 더 채워주기도 하네요.
저는 하루 끝이 텅 빌 때, 아주 작은 내 몫 하나를 저녁에 남겨둬요. 좋아하는 음악 한 곡, 창밖을 보는 십 분 같은 거요. 그 작은 조각 하나가 하루에 나를 다시 들여놓아 주더라고요.
퇴근하고 텅 빈 것 같다면, 그건 하루를 잘못 산 게 아니라 그 안에 내 자리가 없었던 것뿐이에요. 저녁까지 의무로 다 메우는 대신, 아주 작은 내 몫 하나를 남겨두세요. 그 조각이 빈 저녁을 조금은 덜 허전하게 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