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아리방에 선반이 하나 있거든. 처음엔 비어 있었어.
벼룩시장 아주머니가 주신 찻잔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어. 다들 그 찻잔 하나로 돌아가면서 차를 마셨지.
그러다 후배가 제안했어. 각자 머그컵 하나씩 가져오자고.
불나방 좋아! 나 제일 큰 거 가져올 거야.
다음 날 선반에 머그컵이 다섯 개 놓였어.
불나방은 진짜 제일 큰 걸 가져왔어. 빨간색에 "이번엔 다르다"라고 적힌 컵. 직접 주문 제작했대.
칼손은 고양이 그림 컵. 칼손 기분 좋은 날 이모티콘이 고양이잖아.
후배는 노란 컵. 반에서 겉돌 때 위로가 됐던 색이래.
나는 그냥 집에 있던 흰 컵. 부장은 특별할 거 없대.
돌부처는 아무 무늬 없는 회색 컵을 가져왔어.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
다들 돌부처답다고 웃었어. 돌부처도 고개를 끄덕였어.
근데 다음 날 보니까 돌부처 컵 손잡이에 작은 스티커가 붙어 있더라. 선인장 모양.
후배가 몰래 붙였대. 돌부처 선배 컵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돌부처가 그 스티커를 보고 한참 아무 말 안 했어. 떼지도 않았어.
돌부처 이거 떼지 마.
컵이 생기고 나서 동아리방이 좀 달라졌어.
다들 오자마자 자기 컵부터 찾아. 차를 타고 자기 자리에 앉아.
누가 안 온 날은 선반에 그 애 컵만 남아 있어. 그러면 다들 단톡방에 물어봐. 오늘 안 오냐고.
컵 하나가 출석부가 된 거야.
생각해보면 컵 하나가 별거 아니잖아. 그냥 컵이야.
근데 선반에 내 컵이 놓여 있다는 게 생각보다 큰 위로더라. 여기 내 자리가 있다는 거니까.
후배가 소파 끝자리에 손을 얹는 것처럼, 칼손이 개미 키링을 다는 것처럼. 우리는 다들 여기 내 거 하나를 두고 싶었던 거라니까.
칼손 고양이 컵 보면 기분 좋아져.
너도 어딘가에 네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으면 컵 하나 가져다 둬봐. 동아리방이든 교실 사물함이든.
내 거 하나가 놓여 있으면 돌아올 이유가 생긴다니까. 새 동아리방 선반엔 이제 컵이 다섯 개 있어. 찻잔까지 하면 여섯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