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아리방 화이트보드에 돌아가면서 한 마디 쓰잖아. 그날은 돌부처 차례였어.
돌부처가 마커를 들고 썼어. "오늘도 버팀."
근데 다들 그 글씨를 보고 멈췄어. 엄청 예뻤거든.
반듯하고, 획이 깔끔하고, 간격도 딱 맞았어. 꼭 인쇄한 것 같았어.
불나방 이거 돌부처가 쓴 거 맞아?
다들 몰랐어. 돌부처 글씨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거든.
돌부처는 말도 없고 메모도 잘 안 하니까. 쪽지도 "응" 같은 거만 썼고.
근데 마음먹고 쓰니까 이렇게 예쁜 거야.
칼손이 부럽대. 자기 글씨는 늘 기울어져 있대.
돌부처한테 물어봤어.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쓰냐고.
돌부처가 그러더라. 할머니한테 배웠대.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매일 붓글씨를 썼대.
말이 없으니까 할머니랑 붓글씨 쓰는 게 제일 편했대. 말 안 해도 되니까.
그래서 글씨가 예뻐졌대.
돌부처 말 대신 글씨 연습했어.
신입 후배가 그 화이트보드를 사진으로 찍었어. 그리고 연습장에 따라 쓰기 시작했어.
한 글자씩 천천히. 돌부처 글씨처럼 쓰려고.
돌부처가 그거 보더니 후배 옆에 가서 앉았어. 그리고 마커 잡는 법을 알려줬어.
말은 거의 안 했어. 손으로만. 후배 손 위에 자기 손을 얹고 같이 썼어.
생각해보면 돌부처랑 몇 달을 같이 있었는데 이걸 몰랐잖아.
오래 본 친구한테도 아직 모르는 게 있는 거야. 말이 적은 애일수록 더.
그걸 알게 되니까 돌부처가 좀 다르게 보였어. 무표정한 돌부처 안에 붓글씨 쓰던 꼬마가 있었던 거라니까.
칼손 나도 가르쳐줘. 기울어진 거 고치고 싶어.
너도 친구의 의외의 모습이 부러우면 그 친구한테 가르쳐달라고 해봐. 생각보다 기꺼이 알려줄 거야.
돌부처는 요새 동아리방에서 글씨 선생님이야. 화이트보드 한 마디가 날마다 반듯해지고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