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확 추워진 아침에 동아리방에 들어갔는데 큰 창에 김이 잔뜩 서려 있었어.
밖은 안 보이고 하얗게만 보였어. 히터를 틀어놔서 그런가 봐.
불나방이 들어오자마자 창으로 가더니 손가락으로 뭘 쓰기 시작했어.
불나방 이거 하려고 일찍 왔다니까.
불나방은 큰 글씨로 썼어. "오늘은 다르다."
다들 웃었어. 불나방이 "이번엔 다르다" 대신 "오늘은"으로 바꿨대. 이번엔 너무 길어서.
그다음에 칼손이 왔어. 칼손은 작게 고양이를 그렸어. 기분 좋은 날 고양이.
후배는 "오늘도 왔다"를 썼어. 화이트보드에 있는 그 말.
돌부처는 창 구석에 작게 곰을 그렸어. 멍하니 앉아 있는 곰.
단톡방에서 제일 안 좋은 날에만 보내는 그 곰.
다들 그거 보고 조용해졌어. 돌부처 오늘 안 좋구나.
나는 그 곰 옆에 작게 하트를 그렸어. 아무 말 안 하고.
히터가 계속 돌아가니까 김이 점점 걷혔어.
불나방 글씨부터 사라졌어. 큰 글씨라서 가운데 있었거든. 그다음 칼손 고양이, 후배 글씨.
다 사라지고 창밖이 보이기 시작했어. 운동장이랑 하늘.
근데 돌부처 곰은 끝까지 남아 있었어. 창 구석이라 김이 제일 늦게 걷혀서.
생각해보면 김 서린 창에 쓰는 건 금방 사라지잖아.
그래서 오히려 솔직하게 쓰게 되는 것 같아. 남는 게 아니니까.
돌부처도 단톡방엔 곰을 잘 안 보내는데 창엔 그렸잖아. 금방 사라질 거니까 그릴 수 있었던 거라니까.
돌부처 곰 아직 있네.
점심때 보니까 곰이 거의 다 사라져 있었어. 내 하트도.
근데 돌부처 표정이 아침보다 좀 나아 보였어. 다들 곰을 봤다는 걸 알았으니까.
너도 마음을 말로 하기 어려우면 김 서린 창에 한번 그려봐. 금방 사라지니까 솔직해질 수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