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자고 말하려다 말았네요. 그 사람은 부담스러워할 거라고 혼자 정해뒀어요.
물어본 적은 없는걸요. 그런데도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네요.
물어보면 거절하기 곤란할 테니까 아예 안 묻는 거라고요.
그게 배려처럼 보였더라고요. 그런데 결과만 보면 그 사람은 초대받은 적도 없는 셈이군요. 거절할 기회도 없고 갈 기회도 없었던 겁니다.
상대의 마음을 대신 정하는 것은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자리를 하나 없애는 일이다.
왜 그렇게 정했나 보면 제 쪽 이유가 더 큽니다.
거절당하는 게 싫었던 거지요. 물어보고 안 된다고 하면 그 말을 들어야 하는걸요. 그래서 미리 안 될 거라고 정해두고 안 물어본 겁니다. 겁을 배려로 이름 붙인 셈입니다.
한참 뒤에 그 얘기가 나왔네요.
왜 말도 안 했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는데, 그쪽은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었습니다. 저 혼자 몇 달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거지요.
제가 짐작하는 방향이 늘 비슷하더라고요.
싫어할 거야, 부담스러울 거야, 귀찮아할 거야. 좋아할 거라고 짐작한 적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러니 그 짐작은 상대에 대한 게 아니라 제 예상 쪽에 가깝겠지요.
요즘은 그냥 묻게 되네요.
부담이면 안 와도 된다는 말을 붙여서요. 그러면 상대가 편하게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저는 정해두지 않아도 되겠지요. 두 문장이면 되는 일이었군요.
물어보면 아니라는 답이 올 때도 있어요.
그건 그것대로 낫더라고요. 제가 지어낸 거절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거절이니까요. 확실한 아니오가 짐작한 아니오보다 마음이 덜 무거운걸요.
정해주지 않고 물어보는 게 그 사람 몫을 돌려주는 일이겠지요.
오늘 누구한테 말하려다 미리 접으셨다면, 한 줄만 보내보셔도 늦지 않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