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반쯤 먹었을 때 저녁에 뭘 먹을지를 정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있는 걸 씹으면서요.
먹고 있는데 머리는 다음 끼니에 가 있더라고요.
그러고 나면 뭘 먹었는지가 흐릿해요.
맛이 어땠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분명히 다 먹었는데 기억에는 잘 안 남는 겁니다. 몸은 여기 있고 머리는 다음에 가 있으니 그렇게 되겠지요.
다음을 세는 동안 지금은 지나간다. 지나간 지금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돌아보면 다른 데서도 똑같아요.
걸으면서 도착해서 할 일을 생각하고, 일하면서 끝나고 뭘 할지를 생각합니다. 늘 한 칸 앞에 가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 하루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되는 것도 당연한걸요.
이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겠지요.
저녁 준비를 하려면 미리 정해야 하니까요. 문제는 그게 먹는 동안에 일어난다는 겁니다. 정할 시간이 따로 있으면 먹을 때는 안 해도 되는 거고요.
그래서 요즘은 정하는 시간을 따로 둡니다.
아침에 한 번 그날 끼니를 대충 정해두고요. 그러면 먹는 동안에는 다시 안 정합니다. 미리 해두면 그 자리에서 안 해도 되는 게 여기서도 그렇네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해보는 게 있어요.
첫 입만 천천히 먹습니다. 그 한 입만 맛을 보고 나머지는 평소처럼 먹고요. 다 천천히 먹으려니 안 되는데 한 입은 되더라고요.
누구랑 같이 먹으면 이게 덜해요.
말을 하느라 다음 생각을 못 하니까요. 혼자 먹을 때만 머리가 앞으로 달려가는 겁니다. 그러니 이건 먹는 문제가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겠고요.
혼자 먹는 날에는 소리를 하나 틀어두면 좀 잡히더라고요.
지금 먹는 걸 맛보는 것도 하루에 몇 번은 해야 하는 일인걸요.
안 하면 하루가 통째로 다음에만 있게 되고요. 오늘 먹으면서 다음 끼니를 세고 계셨다면, 첫 입만 한 번 천천히 드셔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