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이 어느 날 손등에 볼펜으로 뭘 그리고 왔어. 바를 정 자.
뭐냐고 물었더니 하루에 계좌 몇 번 보는지 세는 거래. 한 번 볼 때마다 한 획.
점심때 봤는데 벌써 바를 정 자가 세 개 넘게 있더라.
불나방 이거 생각보다 많다니까.
첫날 저녁에 불나방 손등을 봤는데 좀 놀랐어. 바를 정 자가 손목까지 내려가 있었거든.
본인도 놀랐대. 그렇게 많이 보는 줄 몰랐대.
생각 없이 여는 게 대부분이었대. 수업 끝나서 한 번, 화장실 가서 한 번, 친구 기다리면서 한 번.
세기 전엔 몰랐던 거야. 그냥 손이 알아서 열고 있었던 거지.
그다음 날부터 좀 달라졌대. 폰을 열려다가 손등이 보이면 멈칫하게 된대.
또 한 획 그어야 하잖아. 그게 귀찮기도 하고 좀 창피하기도 하대.
그래서 한 번 참게 되고, 두 번 참게 되고. 일부러 줄이려고 한 게 아니라 세다 보니까 저절로 줄었대.
칼손 나도 해볼까. 근데 무서워.
칼손은 해보고 싶은데 무섭대. 숫자가 얼마나 나올지 보는 게 무섭대.
그 말이 좀 웃기면서도 이해가 됐어. 계좌 열기 무서운 거랑 똑같은 거잖아. 이번엔 계좌 연 횟수를 보는 게 무서운 거고.
다들 피하는 게 이렇게 겹겹이 있는 거라니까.
닷새째에 불나방 손등을 봤는데 바를 정 자가 손등 절반에서 멈춰 있더라.
첫날의 반 정도. 불나방이 엄청 뿌듯해했어. 손등을 다들한테 보여주고 다녔다니까.
돌부처가 그 손등을 보더니 한 마디 했어.
돌부처 손 씻어. 잉크 번져.
다들 빵 터졌지. 그날 불나방은 손을 씻었고 일주일 실험은 거기서 끝났어.
나는 불나방이 줄인 횟수보다 세기 시작한 게 더 대단한 것 같아. 세는 순간부터 보이니까.
너도 뭔가 너무 자주 하는 것 같으면 일단 세봐. 줄이는 건 그다음이라니까. 동아리방에 볼펜은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