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며칠 뒤에 그 사람이 말을 걸어왔네요. 사과는 아니었어요.
아주 사소한 걸 묻더라고요. 그게 신호인 줄 알았는데 저는 짧게 대답하고 말았네요.
그게 화해하자는 뜻인 건 알았어요.
사과를 못 하는 사람은 대개 그런 식으로 오는걸요. 밥 먹었냐, 그거 어떻게 됐냐 하면서요. 알면서도 저는 그날 못 받았어요.
먼저 내미는 손은 대개 말이 아니라 사소한 질문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했어요.
그때는 아직 화가 남아 있었네요. 받아주면 제가 다 넘어가는 것 같았고요. 억울한 게 정리가 안 됐는데 화해부터 하면 그게 없던 게 될까 봐서요.
며칠 지나서 그 생각을 했어요.
그 사소한 질문을 하기까지 그 사람도 며칠 걸렸겠지요. 제가 짧게 받으니까 그쪽도 더 못 걸었을 거고요. 서로 한 번씩 물러선 셈이 됐고요.
그 뒤로 만나면 좀 겸연쩍어요.
그날 못 받은 걸 둘 다 아니까요. 다시 그 얘기를 꺼내기도 뭣하고 안 꺼내자니 어색하고요. 처음 싸운 것보다 그다음이 더 오래 가는 것 같더라고요.
한참 있다가 제가 비슷하게 해봤어요.
사과 얘기는 안 하고 사소한 걸 하나 물었는걸요. 그쪽이 길게 답을 하더라고요. 그날은 그걸로 넘어갔네요. 먼저 내미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네요.
그 일을 겪고 나서 신호의 모양을 좀 알게 됐어요.
사과 대신 오는 사소한 질문, 평소에 안 하던 연락, 뭘 나눠 주는 것 같은 것들이요. 그게 뭔지 알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짧게라도 받을 수 있겠지요.
받는다고 다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요. 억울한 건 나중에 따로 말해도 되는 겁니다.
누가 먼저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날 못 잡았어도 다음에 제가 내밀면 되는 거고요. 오늘 누가 사소한 걸 물어왔다면, 그게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