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오래된 친구 집에 놀러 갔어요. 거실에 앉아 둘이 각자 책을 읽었지요.
한 시간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러다 친구가 고개를 들고 배고프지? 하고 물었네요. 그게 그날 처음 꺼낸 말이었어요.
보통은 침묵이 어색해요.
처음 만난 사람이나 덜 친한 사람과 있으면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지요. 그런데 그 친구와는 그렇지 않았어요. 말이 없어도 그냥 편했지요.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어요.
그 친구와는 십 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지요. 기쁜 일, 슬픈 일, 아무것도 아닌 일까지요. 그렇게 많은 말을 지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말이 없어도 되는 것 같아요. 말을 안 해도 서로 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말이 없어도 편한 사이는, 이미 많은 말을 함께 지나온 사이다.
둘이 같이 있지만 각자 자기 일을 했어요.
친구는 소설을, 저는 에세이를 읽었지요. 가끔 친구가 책장 넘기는 소리, 창밖 빗소리만 들렸어요. 혼자 있는 것 같은데 혼자가 아니었지요. 그게 이상하게 위로가 됐네요.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얘기가 떠올랐어요.
너무 가까우면 찔리고, 너무 멀면 추운 거리요. 그 친구와 저는 그 적당한 거리를 찾은 것 같아요. 같은 방에 있지만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거리요. 찔리지도 춥지도 않은 거리였어요.
배고프지? 하는 말에 둘 다 웃었어요.
친구가 라면을 두 개 끓였지요. 먹으면서도 별말 없었어요. 맛있다, 정도였지요. 그래도 그날 저녁이 참 따뜻했어요. 많은 말보다 그 라면 두 그릇이 더 많은 걸 말해줬던 것 같네요.
말이 없어도 편한 사이는 쉽게 생기지 않지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오늘은 그냥 옆에 앉아만 있어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