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엠티를 갔거든. 작은 펜션 하나 빌려서.
낮에는 고기 굽고 게임하고 시끄러웠어. 다들 신났지.
근데 진짜 얘기는 밤에 나왔어. 불 끄고 다 같이 누운 다음에.
불 끄고 한 오 분쯤 조용했어. 다들 자는 줄 알았거든.
그때 칼손이 천장을 보면서 말을 꺼냈어. "근데 있잖아."
그러고는 자기가 요새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하더라. 동아리방에서는 한 번도 안 한 얘기.
다들 조용히 들었어. 아무도 끼어들지 않고.
칼손 근데 있잖아, 나 요새 잠을 잘 못 자.
칼손 얘기가 끝나니까 불나방이 이어서 말하더라. "근데 있잖아."
자기도 사실 겁난대. 늘 이번엔 다르다고 하는데 속으로는 무섭대.
그다음엔 돌부처가 했어. 짧게. "근데 있잖아, 나도." 그게 다였는데 다들 알아들었어.
그날 밤 다들 "근데 있잖아"로 시작했어. 그게 우리끼리 진짜 얘기 하는 신호가 됐어.
돌부처 근데 있잖아, 나도.
다음 날 아침에 생각해봤어. 왜 불 끄고 나서야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
얼굴이 안 보여서 그런 것 같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 표정을 안 봐도 되니까.
동아리방에서는 다들 서로 얼굴을 보잖아. 그러면 괜찮은 척을 하게 되거든.
근데 깜깜하면 척할 필요가 없어. 목소리만 있으니까. 그래서 진짜가 나오는 거라니까.
나도 그날 했어. "근데 있잖아."
부장 하면서 가끔 지친다고. 나는 종목도 모르는데 애들한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조용하다가 칼손이 그러더라. 부장 없으면 우리 다 흩어졌을 거라고. 다들 "응" 했어. 깜깜해서 다행이었어. 내 얼굴이 좀 이상했거든.
엠티 다녀와서 동아리방에서도 가끔 "근데 있잖아"가 나와. 그 말이 나오면 다들 조용해져.
불은 안 꺼도 돼. 그 말이 불 끄는 거랑 같은 거니까.
너도 얼굴 보고는 못 하는 얘기가 있으면 깜깜할 때 해봐. "근데 있잖아"로 시작하면 생각보다 쉽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