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매일 동아리방 문을 제일 먼저 열거든. 부장이니까.
근데 그날은 문 손잡이에 손을 댔다가 뗐어. 그리고 복도 끝 자판기 앞으로 갔어.
뭘 뽑지도 않고 십 분을 그냥 서 있었다니까. 자판기 불빛만 보면서.
이유는 별거 없었어. 그냥 그날은 애들 얼굴을 보기가 싫더라.
부장을 하다 보면 애들 얼굴을 계속 봐야 하거든. 누가 오늘 안 좋은지, 누가 말이 없는지.
그게 매일 쌓이니까 좀 지쳤던 것 같아. 내 얼굴은 아무도 안 보는데 나는 계속 남의 얼굴을 보고 있었던 거잖아.
거기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 나는 종목도 모르고 숫자도 모르는데 왜 부장을 하고 있나.
애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옆에 앉아주는 거밖에 없거든. 그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날은 그 생각이 유독 크게 들리더라.
십 분쯤 지났는데 칼손이 복도로 나왔어. 나를 보더니 다가오더라.
뭐 하냐고 묻길래 그냥 자판기 본다고 했어. 칼손이 옆에 서더니 같이 자판기를 보더라.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참 있다가 칼손이 동전을 넣었어. 내가 맨날 마시는 거 하나 뽑아서 줬어.
칼손 부장 없으니까 방이 이상해.
부장 없으니까 방이 이상하다는 그 말이 생각보다 크게 들리더라.
나는 내가 하는 게 별거 아닌 줄 알았거든. 옆에 앉는 거, 과자 뜯어놓는 거, 문 여는 거.
근데 그게 없으니까 다들 뭔가 빠진 걸 느꼈던 거야. 별거 아닌 게 매일 있으면 별거가 되는 거라니까.
불나방 문 안 열려서 다들 복도에 서 있었잖아.
그날 결국 들어갔어. 늦게. 문은 이미 불나방이 열어놨더라.
다들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 돌부처가 내 자리에 과자 하나 놔뒀고. 내가 맨날 하던 걸 걔가 한 거야.
그때 알았어. 지키는 애도 가끔은 지켜받아도 되는 거구나.
너도 뭔가 맡고 있는 게 지치면 하루쯤은 문 앞에서 돌아서도 돼. 그런다고 다 무너지지 않거든.
찾으러 와줄 애가 있다니까. 동아리방은 부장이 늦어도 안 닫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