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에 일이 조금 한가했어요. 오랜만에 책상 서랍을 정리하기로 했지요.
맨 아래 서랍을 열었더니 종이가 가득했어요. 메모, 영수증, 명함, 포스트잇까지요. 몇 년치가 층층이 쌓여 있었네요.
위에서부터 하나씩 꺼냈어요.
맨 위엔 지난달 회의 메모가 있었지요. 아래로 갈수록 오래된 것들이 나왔어요. 지난해 출장 영수증, 그 전 송년회 자리 배치표 같은 거요. 서랍이 꼭 지층 같았어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네요.
맨 안쪽에서 카드 한 장이 나왔어요.
입사 첫 주에 팀에서 받은 환영 카드였지요. 다섯 명이 한 줄씩 적어준 거였어요. 그 이름들을 하나씩 읽어봤어요. 그런데 다섯 명 중 지금 회사에 남은 사람은 저 하나였어요. 다들 언제 떠났는지 기억도 잘 안 나더라고요.
서랍 속 종이들은, 내가 이 자리에서 버텨온 시간이 남긴 지층이다.
카드 속 이름들을 보며 한 명씩 떠올렸어요.
다들 각자의 이유로 떠났지요. 이직하고, 결혼해서 이사 가고, 공부하러 가고요. 처음엔 다들 오래 함께할 것 같았는데요. 이번 주에 퇴사하신 과장님까지 생각나서 조금 쓸쓸해졌네요.
대부분은 버렸어요.
영수증, 지난 회의 메모, 날짜 지난 안내문이요. 쓰레기봉투 하나가 금방 찼지요. 그런데 환영 카드는 버릴 수가 없었어요. 다시 서랍 맨 안쪽에 넣어뒀어요. 그건 버리는 게 아니라 남겨둬야 할 것 같았거든요.
쇼펜하우어는 지나간 시간이 우리 안에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고 했대요.
서랍 속 종이들이 딱 그런 것 같았어요. 대부분은 버려도 되는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이 쌓여 지금 이 자리의 제가 된 거겠지요.
서랍 속에 쌓인 종이들은 내가 이 자리에서 버텨온 시간의 지층 같아요.
정리하면서 한 장쯤은 남겨둬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