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이 연습장을 한 장 펼치더니 그러더라. 크리스마스 계획 세우자고.
다들 어이없어했어. 아직 두 달은 남았는데.
근데 불나방이 진지했어. 연습장에 트리를 그려 왔더라. 설계도래.
불나방 미리 계획해야 제대로 하지.
트리 설계도를 보니까 웃겼어.
맨 위에 별 대신 개미 더듬이 머리띠를 올리자고 적혀 있었어. 핼러윈 때 쓴 거.
장식은 우리 물건들로 하재. 귤 껍질 말린 거, 칼손 종이학, 돌부처 털실 남은 거.
다들 웃었는데 다들 좋다고 했어. 그게 우리 트리 같았어.
다들 크리스마스에 하고 싶은 걸 하나씩 말했어.
칼손은 선물 교환하고 싶대. 이유 없이 주는 선물 말고 이유 있는 선물.
돌부처는 목도리를 다섯 개 뜨겠대. 지금부터 뜨면 될 거래.
후배는 다 같이 영화 보고 싶대. 상영회처럼.
나는 그냥 다 같이 있고 싶다고 했어.
돌부처 목도리 다섯 개. 구멍은 줄일게.
불나방한테 물어봤어. 왜 벌써부터 계획하냐고.
불나방이 좀 생각하더니 그러더라. 기다릴 게 있으면 지금이 덜 힘들대.
첫눈 기다리는 거랑 똑같대. 언제 올지는 알지만 기다리는 동안 설렌대.
요새 다들 좀 힘들잖아. 그래서 다 같이 기다릴 걸 하나 만들고 싶었대.
생각해보면 불나방은 늘 앞을 보는 애야. 이번엔 다르다, 첫눈, 이제는 크리스마스.
예전엔 그게 좀 불안해 보였어. 계속 다음만 보는 것 같아서.
근데 이번엔 달라 보였어. 혼자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기다릴 걸 만드는 거니까.
먼 날을 같이 기다리는 계획 하나가 지금을 버티게 해주는 거라니까.
칼손 나 이번엔 선물 진짜 고민해볼게.
너도 요새 하루하루가 무거우면 친구들이랑 먼 날 계획 하나 세워봐. 크리스마스든 방학이든.
같이 기다리면 지금이 좀 가벼워진다니까. 동아리방 벽엔 불나방 트리 설계도가 붙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