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 갔다가 엄마가 이사 다닐 때마다 챙겨 오신 제 상자를 열어봤어요. 맨 아래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이 나왔지요.
초등학교 때 쓴 나의 꿈, 이라는 종이였어요. 거기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네요. 비 오는 날 창가에서 책 읽는 사람.
처음엔 웃음이 났어요.
다른 아이들은 의사, 선생님, 과학자를 적었을 텐데 저는 그런 걸 적었더라고요. 직업도 아니고 그냥 어떤 모습이었지요.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을지 궁금해지네요.
그 종이를 들고 한참 앉아 있었어요.
어릴 때 저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어요.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게 제일 행복했지요. 그 아이는 그게 커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었던 거예요. 거창한 꿈 대신 작은 장면 하나를 꿈꿨던 거군요.
어린 날의 꿈은 종종 직업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장면 하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 저는 그렇게 살고 있어요.
비 오는 날이면 창가에 앉아 있지요. 책을 읽기도 하고 그냥 비를 보기도 하고요. 회사에 다니고 바쁘게 살지만, 그 장면만큼은 놓지 않고 있었네요. 모르는 사이에 어릴 적 꿈을 조금씩 이루고 있었던 거예요.
어릴 적 꿈 얘기를 하면 다들 아쉬워하지요.
그때 되고 싶던 걸 못 됐다고요. 저도 한때는 그랬어요. 큰 무언가가 되지 못한 것 같아서요. 그런데 그 종이를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꿈이 꼭 커야 하는 건 아니었구나 하고요.
엄마한테 그 종이를 보여드렸어요.
엄마가 웃으시며 그때도 너는 창가만 좋아했다고 하셨지요. 비만 오면 창문에 코를 붙이고 있었다고요. 그 얘기를 들으니 그 아이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어릴 적 꿈이 생각보다 작고 조용했다면 그건 지금도 이룰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오늘 저녁 그 꿈을 한 번 살아봐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