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부탁했다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네요. 그 뒤로 아무것도 못 부탁하고 있네요.
며칠 전에도 뭘 부탁하려다가 결국 안부만 보내고 닫았어요.
그 사람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안 된다고 했어요.
이유도 말해줬고 태도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니 상처받을 일은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그 뒤로 손이 안 나갑니다.
거절은 한 번이지만, 거절을 겪은 사람은 그것을 여러 번 다시 겪는다.
한 번 아니오를 들으면 그다음부터는 예상이 생기는걸요.
이 사람은 이런 걸 안 해주는 사람이라고 정해두는 거지요. 그러면 물어볼 이유가 없어집니다. 물어보지 않으니 확인할 기회도 없고요.
돌아보면 그때 그 사람도 여유가 없었어요.
시기가 안 맞았던 겁니다. 지금은 다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그 한 번을 그 사람의 성격으로 바꿔서 저장해뒀네요.
부탁을 아예 안 하는 게 편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서로 아무것도 안 부탁하는 사이는 좋은 사이 같지만 실은 얕은 사이에 가깝지요. 조금씩 신세를 지고 갚는 게 관계를 이어주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크기를 줄여봤어요.
큰 걸 부탁했다가 또 안 되면 그때는 진짜 못 하겠으니까, 아주 작은 것부터 해봅니다. 들어주면 그다음이 좀 쉬워지고요. 안 되면 그것도 작은 아니오라 덜 남습니다.
반대편에 서봐서 아는 것도 있어요.
제가 안 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을 덜 아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날 제 사정이 그랬을 뿐이지요. 그 뒤로 그 사람이 저한테 아무것도 안 부탁하면 저는 그게 좀 서운할 것 같네요.
거절한 쪽도 다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는 겁니다.
한 번의 아니오가 그 사람 전체의 답은 아니겠지요.
그날 그 일에 대한 답이었을 뿐인걸요. 오늘 부탁하려다 접으셨다면, 크기를 줄여서 한 번만 더 해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