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런데 왜 무거운지 알 수가 없었지요.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저녁에 노트를 펴고 오늘 기분을 한 단어로 적어보려 했네요. 그런데 그것도 잘 안 되더라고요.
처음엔 슬픔이라고 썼어요.
그런데 슬픈 건 아닌 것 같아서 지웠지요. 다음엔 피곤이라고 썼어요. 피곤하긴 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어요. 서운함이라고도 써봤지만 누구한테 서운한지 몰랐고요. 세 단어를 다 지웠네요.
결국 이렇게 적었어요. 흐림.
날씨처럼요.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맑은 것도 아닌, 그냥 구름이 낀 하늘이요. 그게 제일 정확한 말 같았어요. 적고 나니 조금 웃음이 났네요.
이름을 붙이지 못한 마음은, 날씨처럼 그냥 흐림이라고만 적어도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감정에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았어요.
이름을 알아야 어떻게 할지 알 테니까요. 슬프면 울고, 피곤하면 자고, 서운하면 말하고요. 그런데 이름이 안 붙으니까 뭘 해야 할지도 몰랐던 거예요. 그게 답답했던 거군요.
그런데 어쩌면 다 섞여 있었던 것 같아요.
조금 슬프고, 조금 피곤하고, 조금 서운하고요. 하나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이었지요. 사람 마음이 늘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친구에게 오늘 기분이 흐림이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친구가 답했지요. 나도 오늘 흐림, 같이 흐리자. 그 말에 웃었어요. 이름을 붙이지 못한 마음도 누군가와 나누니까 조금 가벼워지더라고요.
쇼펜하우어는 사람 마음 깊은 곳에 스스로도 다 알 수 없는 힘이 있다고 봤대요.
그렇다면 내 감정을 다 모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꼭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었네요.
이름을 붙이지 못한 마음도 충분히 진짜 마음이에요.
오늘은 그냥 흐림이라고만 적어두고 쉬어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