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기입장 얘기가 나왔는데 신기한 게 있었어. 동아리 애들 거의 다 한 권씩은 사봤더라.
근데 끝까지 쓴 애는 하나도 없어. 한 명도.
다들 한 달도 못 갔다고 웃는데 웃는 얼굴이 좀 떫더라.
불나방 난 머릿속에 다 있어. 적을 필요가 없다니까.
그중 하나가 자기 거를 가방에서 꺼냈거든. 펼쳐보니까 첫 장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 썼더라.
뒷장까지 자국이 배어 있을 정도야. 각오가 보이잖아.
근데 둘째 장부터는 연필이야. 그것도 흐리게. 지우려고 연필로 바꾼 거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걔가 그러더라. 적으면 진짜가 된다고.
머릿속에서는 대충 괜찮은데 종이에 쓰면 딱 보이잖아. 어디서 얼마가 샜는지.
그게 싫은 거야.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지니까.
돌부처 안 보면 편해.
듣다 보니까 동아리방에서 매일 하는 얘기랑 똑같더라. 보기 싫어서 안 여는 거.
돈이 크든 작든 마음은 같은 거거든. 확인하는 순간 핑계가 없어지는 게 무서운 거잖아.
나도 그래. 편의점 영수증은 받자마자 버린다니까.
그래서 애들이랑 하나 정했어. 금액 말고 기분만 적자고.
오늘 쓴 거 보고 괜찮았는지 아까웠는지만 한 줄. 숫자는 안 써도 돼.
그렇게 하니까 일주일 넘긴 애가 둘 나왔어. 우리 방 기록이야.
생각해보면 기입장 사는 날은 다들 기분이 좋았대. 이제 달라질 것 같아서.
문구점에서 표지 고르는 데만 한참 걸렸다는 애도 있었어. 그 설렘은 진짜였거든.
근데 설렘이랑 확인은 다른 거잖아. 사는 건 설레는데 적는 건 무섭다니까.
그래서 새 기입장이 서랍에 쌓이는 거야. 설렘만 계속 사는 거지.
나는 그 마음을 비웃을 수가 없더라. 달라지고 싶었던 건 진짜니까.
너도 기입장 사놓고 비워뒀으면 그냥 그렇다고 해. 게을러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그런 거라니까.
숫자는 몰라도 마음은 적을 수 있거든. 그거부터 하면 되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