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별일도 아니었는데요.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여는 순간 멈추더군요. 그 몇 초 사이에 얼굴이 정리됐어요.
이상한 일이지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서 오히려 잘 나옵니다.
버스나 병원 대기실 같은 데서요. 아무도 저를 모르니까 봐도 그만인 겁니다. 봐도 다음 날 얼굴을 볼 일이 없는걸요.
낯선 사람 앞에서는 무너져도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대개 가까운 곳에 있다.
집에 있는 사람은 내일도 보고 모레도 봅니다.
제가 무너진 걸 보면 그 사람이 그 뒤로 저를 걱정하게 되지요.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게 미안한 겁니다. 그러니 문을 여는 순간 얼굴이 정리되는 건 예의에 가까운 셈이군요.
문제는 그러다 보면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겁니다.
밖에서 다 쏟고 들어와서 안에서는 멀쩡한 얼굴을 하니까요. 나중에 그 사람이 왜 말 안 했냐고 하면 할 말이 없더라고요. 지키려던 게 결국 거리를 만든 셈입니다.
한동안은 제가 가족한테 마음을 안 여는 건가 싶었어요.
그건 아니더군요. 오히려 그쪽이 더 소중해서 흔들리게 하기 싫었던 겁니다. 순서가 반대였던 거지요. 이걸 알고 나니 저 자신을 좀 덜 탓하게 됐습니다.
울음이 안 나오는 걸 억지로 나오게 할 수는 없더라고요.
대신 문장 하나를 준비해뒀습니다. 오늘 좀 힘들었다는 정도의 말이요. 그거 한마디면 그 사람은 알아듣습니다. 우는 것만이 알리는 방법은 아닌걸요.
집에서 못 운다고 마음이 닫힌 건 아닙니다.
밖에서 이미 다 쓰고 들어오신 걸 수도 있고요. 그럴 땐 아무 말 안 하고 옆에 앉아 있기만 해도 됩니다. 저는 요즘 창가에 앉아서 그 정도를 하고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