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던 사람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네요. 아무 상관 없는 사람 이름이었어요.
말하고 나서 제가 먼저 굳었네요. 그쪽은 웃고 넘겼는데 저는 저녁까지 그 생각을 했는걸요.
머릿속에서 뭐가 어떻게 이어진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닮은 것도 아니고 같이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요. 그냥 입에서 다른 게 나온 거지요. 이유가 없으니까 변명할 것도 없는걸요.
실수에는 대개 이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유 대신 부끄러움으로 그 자리를 채운다.
그 사람은 웃고 넘겼어요.
그다음 얘기로 바로 갔고요. 며칠 뒤에 만났을 때도 그 얘기는 안 나왔습니다. 정말 잊은 것 같더라고요. 붙잡고 있는 건 저뿐인 셈이군요.
민망함의 정체를 좀 따져보면 이쪽이겠지요.
이름을 틀렸다는 게 그 사람을 대충 알고 있다는 표시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동안 잘 지내온 게 그 한마디로 흔들리는 것 같고요.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흔들렸는데요.
그 자리에서 짧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길게 설명하려다 말았네요.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니까 설명할 게 없었고요. 짧게 하고 넘어가는 편이 그 사람도 편하겠지요.
저도 다른 이름으로 불린 적이 있어요.
그때 제 반응은 별거 아니었는걸요. 아, 하고 웃고 말았어요. 서운하지도 않았고 그 사람이 저를 소홀히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쪽에서만 이렇게 크게 보는 거였네요.
이 일이 있고 나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네요.
만나면 이름을 한 번은 소리 내서 부르려고 해요. 잘 지냈냐는 말 앞에 붙이는 정도로요. 그러면 다음에 헷갈릴 일이 좀 줄더라고요.
한 번 헷갈렸다고 그동안 제대로 부른 게 없어지지는 않겠지요.
오늘 누구 이름을 잘못 부르셨다면, 짧게 미안하다고 하시고 거기서 접으셔도 되는걸요. 그쪽은 벌써 다음 얘기를 하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