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끝날 때쯤 싸게 나온 걸 하나 샀어요. 다음 해에 입으려고요.
그런데 옷장을 보니 그 전 철에 사둔 게 상표도 안 뗀 채로 있네요.
값이 내려가서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걸요.
그런데 정말 그것뿐이면 안 쓸 걸 사지는 않았겠지요. 끝물에 사면 다음 계절을 미리 정해두는 기분이 듭니다. 다음에도 이걸 입을 거라고 저한테 말해두는 거고요.
다음 계절의 물건을 사두는 일은, 그때까지 이어질 하루들을 미리 세어두는 일이다.
문제는 한 해 뒤예요.
그때 되면 취향이 조금 바뀌어 있고, 몸도 달라져 있고요. 한 해 전에 고른 걸 이번에 꺼내면 어딘가 안 맞습니다. 고른 사람과 입을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닌 셈이군요.
더 자주 있는 일은 이거고요.
사두고 잊습니다. 계절이 오면 새로 사고, 그러고 나서 옷장 안쪽에서 그 전 철 것을 발견하는 거지요. 그럴 때가 제일 허탈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사두면 앞쪽에 걸게 되네요.
안쪽에 넣으면 못 보니까요. 계절이 바뀔 때 앞쪽부터 꺼내 보면 사둔 게 먼저 나오고요. 사는 것보다 어디 두느냐가 더 중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끝물에는 한 개만 사는걸요.
싸다고 몇 개 담으면 다음 철에 그만큼 안 맞고요. 하나면 잊어버려도 아깝지 않고, 맞으면 잘 쓰고요. 그 정도가 적당하더라고요.
그 전 철 것도 결국 이번에 꺼내 입었어요.
한 해 늦게 쓴 셈인데 못 쓴 건 아니니 괜찮고요. 그걸 보고 나니 이번에 사둔 것도 언젠가는 쓰겠지 싶어집니다.
끝물에 사두는 건 다음 철을 미리 정해두는 일이기도 한걸요.
그때도 같은 하루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까요. 오늘 철 지난 걸 하나 사두셨다면, 앞쪽에 걸어두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