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랑 버스를 같이 탈 때가 많거든. 근데 칼손은 꼭 창가 자리에 앉아.
통로 자리 비어 있어도 창가가 날 때까지 서서 기다려. 진짜로.
앉으면 창에 머리를 기대. 그리고 내릴 때까지 밖만 봐.
말 걸어도 대답을 반만 해. 다른 데 가 있는 얼굴이야.
칼손 창가 아니면 멀미 나.
처음엔 멀미 때문인 줄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
나중에 물어봤더니 칼손이 솔직하게 말했어. 창에 머리를 기대야 생각이 정리된대.
창밖 풍경이 흘러가는 걸 보면 머릿속에 엉켜 있던 게 하나씩 풀린대.
동아리방에서도 학교에서도 못 하는 정리를 버스 창가에서 한대.
웃긴 게 하나 있었어. 버스가 덜컹일 때마다 칼손 이마가 창에 살짝 부딪혀.
쿵, 쿵. 근데 칼손은 자세를 안 바꿔. 그냥 계속 기대고 있어.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좀 아프대. 근데 그게 좋대. 정신이 좀 든대.
그 말 듣고 좀 웃겼는데 이해가 되더라. 생각에 너무 빠지면 뭔가 현실로 데려오는 게 필요하잖아.
불나방 나는 버스에서 무조건 자는데.
생각해보면 창가 자리가 좋은 이유는 창밖이 흘러가서인 것 같아.
내 머릿속은 멈춰 있는데 밖은 계속 지나가. 가게, 사람, 나무. 그걸 보면 나도 좀 흘러가는 느낌이 드는 거야.
계좌는 멈춰서 계속 같은 걸 보여주잖아. 근데 창밖은 계속 다른 걸 보여줘.
그러니까 칼손한테 창가 자리는 생각을 흘려보내는 자리라니까.
돌부처 나는 창밖 보면 졸려.
한번은 내가 칼손 옆 통로 자리에 앉아서 같이 창밖을 봤어. 말 안 하고.
칼손이 한참 보다가 그러더라. 오늘은 좀 정리됐다고.
뭐가 정리됐는지는 말 안 했어. 나도 안 물어봤고. 그냥 내릴 때 칼손 얼굴이 탈 때보다 가벼웠어.
너도 머릿속이 엉켜 있으면 버스 창가 자리에 한번 앉아봐. 머리 기대고 창밖만 보는 거야.
밖이 대신 흘러가줄 거라니까. 이마 좀 찧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