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불나방한테 폰을 내밀었거든. 계좌 화면이 열린 채로.
대신 좀 봐달래. 자기는 못 보겠대.
불나방이 좀 당황하더라. 남의 계좌를 봐도 되냐고.
칼손 숫자는 말하지 마. 괜찮은지만 알려줘.
불나방이 화면을 봤어. 한참.
그러더니 칼손한테 손을 보여줬어. 엄지를 옆으로 눕힌 모양.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칼손이 그걸 보더니 숨을 크게 내쉬었어. 그리고 폰을 돌려받아서 화면도 안 보고 껐어.
그게 다였어. 숫자는 한 번도 안 나왔어.
나중에 칼손한테 물어봤어. 왜 직접 안 보냐고.
칼손이 그러더라. 직접 보면 숫자가 머리에 박힌대. 그럼 하루 종일 그 숫자만 생각난대.
근데 불나방이 엄지로 알려주면 숫자 없이 분위기만 알 수 있대. 그게 훨씬 덜 무섭대.
그 말 듣고 알았어. 칼손이 맡긴 건 계좌가 아니라 무서운 마음이었던 거야.
불나방 나도 솔직히 좀 떨렸어. 남의 거라서.
불나방도 그러더라. 부탁받은 쪽도 무거웠대.
화면 보는 동안 칼손 얼굴이 계속 신경 쓰였대. 안 좋으면 어떻게 말하지, 하고.
그래서 엄지를 옆으로 눕혔대. 진짜 괜찮았는지는 모르겠대. 그냥 칼손이 너무 놀라지 않게.
그러니까 그 엄지 하나에 불나방 마음도 들어 있었던 거라니까.
생각해보면 대신 봐달라는 건 혼자 보기 싫다는 거잖아.
칼손이 원한 건 정보가 아니라 옆에 누가 있는 거였어. 같이 보면 덜 무서우니까.
불나방도 그걸 알아서 숫자 대신 엄지를 보여준 거고. 둘이 말은 안 했는데 다 통한 거야.
돌부처 나한테도 맡겨. 나는 무표정으로 알려줄게.
돌부처가 그 말 하니까 다들 빵 터졌어. 돌부처 무표정은 다 똑같아서 하나도 모를 거거든.
너도 혼자 보기 무서운 게 있으면 믿는 사람한테 같이 봐달라고 해. 그거 약한 거 아니야.
숫자 말고 엄지 하나로만 알려달라고 해도 돼. 동아리방엔 엄지 눕혀줄 애가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