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결혼한대요. 그런데 저한테 축사를 부탁했어요.
전화로 그 말을 듣고 한참 아무 말도 못 했지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떨리는데, 그것도 결혼식이라니요. 그래도 친구 부탁이라 해보겠다고 했네요.
그날부터 축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첫 번째는 너무 거창했지요. 사랑이 어떻고 결혼이 어떻고 하는 말들이요. 두 번째는 너무 웃기려다 어색했어요. 세 번째는 너무 길었고요. 세 번 다 지웠네요. 노트북 앞에서 몇 밤을 보냈어요.
그러다 서랍에서 오래된 쪽지 하나를 꺼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제 생일에 써준 거였지요. 첫 문장이 이랬어요. 너랑 같이 있으면 비 오는 날도 괜찮아. 그 문장을 보는데 축사의 첫 줄이 정해졌어요.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기로 했네요.
축사에 담을 말은 멋진 문장보다, 함께 지나온 장면 하나면 충분하다.
그 뒤로는 술술 써졌어요.
멋진 말 대신 함께한 장면들을 떠올렸지요. 비 오는 날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걷던 하굣길, 시험 망치고 떡볶이를 나눠 먹던 저녁, 헤어졌을 때 밤새 통화해준 날이요. 그 장면들을 하나씩 적으니 축사가 됐어요.
축사를 소리 내어 읽어봤어요.
창가에 서서 몇 번이나요. 읽을 때마다 목이 메는 대목이 있었지요. 우산 얘기에서요. 그 대목에서 울면 어쩌나 걱정됐어요. 그래도 몇 번 읽다 보니 조금씩 괜찮아지더라고요.
축사 초안을 친구에게 미리 보여주진 않았어요.
결혼식 날 처음 듣게 하고 싶었거든요. 대신 첫 줄만 살짝 알려줬지요. 친구가 그 쪽지를 아직 갖고 있냐며 놀랐어요. 그리고 전화 너머로 조금 울었어요. 첫 줄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네요.
쇼펜하우어는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눈 사람끼리 덜 외롭다고 했대요.
축사를 쓰며 친구와 나눈 장면들을 다시 꺼내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축사에 담을 말은 멋진 문장보다 함께 지나온 장면 하나면 충분한 것 같아요.
그 사람과의 가장 작은 기억부터 꺼내봐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