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나한테 뭘 물으셨거든. 주식 얘기였어.
그런데 내가 대답하기 전에 자기가 답하시더라. 나는 한 마디도 안 했고.
물으시고 나서 나를 보신 게 반 초도 안 되더라. 바로 이어서 말씀하셨어.
그러니까 대답을 들으실 생각이 없었던 거잖아. 내가 늦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나 대신 대답하는 애가 있다고 내가 썼는데, 이건 자기가 묻고 자기가 답하는 거고.
불나방 그럼 왜 물으세요?
불나방이 물어본 게 그거였어. 왜 물으시냐고.
그건 말하고 싶으셨던 거잖아. 물어보는 게 말 꺼내는 방법이었던 거고.
어른이 먼저 물으면 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계속 썼는데, 이건 그것보다 더 확실한 거고. 아예 안 기다리시니까.
그래도 두 정거장 들었거든. 내려가실 때까지.
내가 할 게 없으니까 듣는 것밖에 없었고. 근데 그게 필요하셨던 거잖아.
버스에서 아주머니 얘기 들은 것도 그랬고. 이 노선에서 세 번째라니까.
돌부처 버스에서 다 하지.
세보니까 물어보는 말이 세 가지더라. 진짜 묻는 거, 말 꺼내려고 묻는 거, 맞다고 해달라고 묻는 거.
친구가 확인해달라고 한 건 세 번째고, 이건 두 번째고. 진짜 묻는 건 제일 드물고.
그러니까 물어봤다고 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거라니까. 어느 쪽인지 보고 정하는 거고.
그리고 방에서도 애가 물으면 반 초는 기다린다니까. 대답할 생각이 있는지 보려고.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물어보면 대답해야 되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모른다고 계속 말했고.
근데 셋 중에 하나만 대답이 필요한 거였어. 나머지는 듣기만 하면 되는 거고.
그거 구분하는 게 대답하는 것보다 중요한 거라니까. 나는 그것만 하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