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어요. 냉장고 소리도 멈추고 창밖도 깜깜했지요.
잠시 뒤 관리사무소 안내 방송이 나왔어요. 변압기 문제로 아파트 전체가 정전됐다고, 복구까지 한두 시간 걸린다고요.
어둠 속에 혼자 있으니 좀 무서웠어요.
휴대폰 불빛을 켜고 현관문을 열어봤지요. 다른 집들도 하나둘 문을 열고 나와 있더라고요. 평소엔 인사도 잘 안 하던 이웃들이었어요. 다들 휴대폰 불빛을 들고 복도에 서 있었네요.
그때 옆집 꼬마가 뭔가를 들고 나왔어요.
생일 케이크에 꽂고 남은 초였지요. 이거라도 쓰세요, 하며 이웃들에게 하나씩 나눠줬어요. 다들 웃으며 받았고요. 누군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줬지요. 작은 생일 초 불빛들이 복도에 하나씩 켜졌어요.
불이 꺼진 밤에야, 매일 지나치던 이웃의 얼굴이 하나씩 보인다.
불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이웃들과 얘기를 나눴어요.
몇 층에 사는지,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는지 같은 얘기요. 몇 년을 같은 복도에 살았는데 처음 알게 된 것들이었지요. 윗집 할머니는 집에 귤이 있다며 한 봉지를 들고 나오셨어요. 어두운 복도에서 다 같이 귤을 까먹었네요.
한 시간쯤 지나 불이 들어왔어요.
다들 와, 하고 박수를 쳤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 아쉬웠어요. 불이 들어오자 다들 금방 각자 집으로 들어갔거든요. 복도는 다시 원래처럼 조용해졌고요.
다음 날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꼬마를 만났어요.
어제 초 고마웠다고 했더니 꼬마가 쑥스럽게 웃었지요. 그 뒤로 복도에서 만나면 서로 먼저 인사를 해요. 정전 하나가 남기고 간 작은 변화였어요.
불이 꺼진 밤에야 서로의 얼굴이 보이기도 하지요.
다음에 복도에서 이웃을 만나면 그날처럼 먼저 인사해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