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고민함 만든 지 이 주쯤 됐을 때야. 누가 동아리방 문을 두드렸어.
열어보니까 처음 보는 애였어. 이 학년 같았어.
그 애가 들어오지 않고 문틈에 서서 게시판을 가리켰어. 우리가 붙인 답장 쪽지.
"괜찮아요? 우리 삼 층에 있어요. 언제든 와요."
불나방 아, 세 번째 쪽지!
그 애가 "이거 보고 왔어요"라고만 했어. 그리고 계속 문틈에 서 있었어.
들어오라고 했는데 못 들어오더라. 발이 안 떨어지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문 앞으로 갔어. 그리고 그냥 물어봤어.
"괜찮아?"
쪽지에 적혀 있던 그 말. 누가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던 그 말.
그 애가 한참 있다가 고개를 저었어. 안 괜찮대.
그리고 조금 울었어. 문틈에 선 채로.
우리는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 왜 안 괜찮은지, 무슨 일인지.
칼손이 휴지를 들고 갔고, 돌부처가 의자를 하나 문 쪽으로 밀었어.
돌부처 앉아.
그 애가 결국 들어와서 앉았어. 문 바로 옆 의자에.
한 시간쯤 있었어. 거의 말 안 했어. 우리도 평소처럼 있었어. 과자 먹고 폰 보고.
중간에 불나방이 과자를 하나 밀어줬어. 그 애가 받아서 먹었어.
가기 전에 그 애가 그러더라. 쪽지 넣고 나서 매일 게시판 확인했대. 답장 붙은 날 진짜 놀랐대.
생각해보면 그 애는 이름도 안 쓰고 쪽지를 넣었잖아. 누가 볼지도 모르고.
근데 우리가 답장을 붙였고, 그 애가 그걸 보고 왔어. 이름 없는 쪽지가 진짜 사람을 데려온 거라니까.
나는 그게 좀 신기했어. 신발 상자 하나가 이런 걸 할 줄 몰랐거든.
칼손 고민함 만들길 잘했다.
너도 누가 괜찮냐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으면 그걸 어디든 적어봐. 이름 없어도 돼.
누군가 답장을 붙일 거라니까. 새 동아리방 문 옆 게시판엔 아직 그 답장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