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누가 케이크를 사 왔어요. 조각 케이크 여러 개가 상자에 담겨 있었지요.
다들 하나씩 골랐어요. 저는 괜찮다며 마지막까지 기다렸고요. 남은 한 조각은 제가 제일 안 좋아하는 당근 케이크였어요. 그걸 먹으며 맛있네요, 하고 웃었네요.
저는 늘 마지막에 골라요.
케이크든, 자리든, 메뉴든요. 다들 고르고 나면 남은 걸 집지요. 먼저 고르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뺏는 것 같아서요. 괜찮다는 말이 습관처럼 먼저 나와요.
생각해보면 양보하는 게 편해서였어요.
먼저 골랐다가 누가 서운해하면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남은 걸 고르면 적어도 그런 걱정은 없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제가 뭘 좋아하는지 말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늘 남은 것만 고르는 사람이 돼 있었네요.
늘 남은 것을 고르는 사람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말할 기회도 같이 양보한다.
제가 당근 케이크를 싫어한다는 건 아무도 몰랐어요.
말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하겠지요. 동료들은 제가 원래 당근 케이크를 좋아하는 줄 알 거예요. 늘 그걸 먹었으니 그렇게 보였겠네요. 양보가 쌓이면 남들이 아는 저와 진짜 저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요.
쇼펜하우어는 남을 배려하는 연민을 귀하게 여겼대요.
그런데 그 연민을 자기 자신에게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의 마음만 챙기다 내 마음을 계속 뒤로 미루면 결국 지치는걸요. 나도 배려받을 사람 중 하나라는 걸 잊고 있었던 거예요.
얼마 전 회의 끝에 또 간식이 돌았어요.
이번엔 용기를 내서 먼저 손을 뻗었지요. 제일 좋아하는 초코 머핀을 집었어요. 아무도 서운해하지 않았어요. 옆자리 동료가 오 웬일로 먼저 골라, 하고 웃었을 뿐이었지요. 생각보다 아무 일도 없었네요.
양보는 다정한 마음이에요.
그래도 가끔은 나도 먼저 고를 자격이 있지요. 다음엔 한 번쯤 제일 먹고 싶은 걸 먼저 집어봐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