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장에 그릇이 여러 개 있는데 쓰는 건 늘 하나예요.
씻어서 엎어두는 자리도 늘 같아서 그 한 칸에만 물자국이 남아 있네요.
그게 제일 예뻐서도 아니고 제일 좋아서도 아니에요.
크기가 딱 맞고 손에 잡히는 느낌이 익어서겠지요. 다른 걸 꺼내면 양을 다시 가늠해야 하고 그게 몇 초 걸리고요. 그 몇 초를 안 쓰려고 늘 같은 걸 꺼내는 거지요.
매일 쓰는 물건은 취향으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한 순서로 고른다.
나머지는 안 쓰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손님이 오면 쓸 거라고 두는데 손님은 자주 안 오고요. 그러니 몇 년째 거의 안 나오는 셈이군요. 안 쓰는 걸 보관하는 데 찬장 절반을 쓰고 있는 거고요.
하나만 쓰다 보니 그게 깨지면 꽤 아쉬울 것 같아요.
실제로 예전에 그런 적이 있는데 며칠 어색했어요. 다른 걸 꺼내 쓰면서 계속 양이 안 맞았고요. 몇 주 지나니까 새 게 손에 익더라고요. 그때부터는 또 그것만 쓰게 되네요.
그래서 한번은 일부러 두 개를 번갈아 써봤어요.
씻는 주기가 여유로워져서 편하긴 했는걸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또 하나로 돌아가 있더라고요. 의식해서 하는 건 오래 안 가는 모양이네요.
그릇만 그런 게 아니에요.
앉는 자리도, 쓰는 컵도, 꺼내는 수저도 정해져 있는걸요. 집 안에 제 동선이 좁게 나 있는 셈이고요. 넓게 쓰면 좋을 것 같은데 몸은 좁은 쪽을 고르더라고요.
요즘은 몇 년째 안 쓴 걸 하나씩 빼내고 있어요.
남 주거나 다른 데로 옮기거나 해서요. 찬장이 좀 비니까 꺼내는 게 더 쉬워지네요. 결국 손이 가는 걸 늘리는 대신 안 가는 걸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로만 손이 가는 건 그게 제일 편해서인걸요.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손이 이미 정해둔 거고요. 오늘 늘 쓰던 걸 또 꺼내셨다면, 그건 그게 맞는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