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게 절반쯤 남았는데 새것을 하나 사 왔네요. 다 쓰려면 아직 한참인데요.
집에 오니 여분이 이미 하나 있었네요. 이제 두 개가 됐는걸요.
이 버릇에 큰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정말 없어서 곤란했던 기억이 딱히 없더라고요. 그런데도 절반쯤 남으면 손이 갑니다. 이유 없이 몸이 먼저 하는 일 중에 하나겠지요.
여유는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루가 조금 덜 위태로워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쪽인 것 같아요.
다 쓰고 나서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이 싫은 겁니다. 그때 나가야 하고, 나가려면 채비를 해야 하고요. 지친 날에 그 일이 하나 생기는 게 무거운걸요.
그러니 여분은 물건이 아니라 그날 안 나가도 된다는 보장인 셈이군요.
하나만 있으면 이상하게 또 불안해지네요.
그거 쓰기 시작하면 여분이 없어지는 거니까요. 그래서 결국 두 개가 됩니다. 셋까지는 안 가는데 둘은 늘 채워두게 되더라고요.
물론 값을 치릅니다.
집이 좁은데 안 쓰는 게 쌓여 있어요. 어떤 건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기도 했네요. 안심에 대한 값을 그렇게 내고 있는 거지요.
전부 여분을 두려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몇 가지만 정해뒀는걸요. 없으면 진짜 곤란한 것들만이요. 나머지는 떨어지면 그때 사기로 했고요. 이렇게 하니까 집도 좀 덜 차고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이게 부딪히기도 하더라고요.
떨어지면 그때 사면 되지 않냐고 하는 쪽이 있습니다. 그 말도 맞아요. 다만 저는 그 사이의 몇 시간을 못 견디는 쪽인 거지요. 어느 쪽이 옳은 게 아니라 견디는 지점이 다른 겁니다.
여분은 쓰려고 두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아직 안 떨어졌다는 걸 알려고 두는 거겠지요. 오늘 안 써도 되는 걸 하나 더 사 오셨다면, 그건 낭비라기보다 그날 마음이 좀 불안했다는 표시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