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골목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낡은 담벼락 앞에 페인트 통이 줄지어 놓여 있었지요.
대학생들이 벽화를 그리고 있었어요. 이웃 아주머니 말로는 구청에서 하는 골목 가꾸기 사업이래요. 뉴스에서도 오래된 동네 골목을 벽화로 꾸미는 곳이 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담벼락은 늘 회색이었어요.
금이 가고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지요. 출근길마다 무심히 지나치던 벽이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그 위에 하늘색을 칠하고 있었어요. 회색 벽이 조금씩 다른 표정을 갖기 시작했네요.
며칠 뒤 벽화가 완성됐어요.
한쪽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그려져 있었지요. 그런데 그 나무 아래에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그려져 있었어요. 골목 할머니가 매일 앉아 계시던 그 빨간 의자였어요. 학생들이 할머니를 보고 그려 넣은 거였네요.
벽에 그려진 의자 하나에도, 그 골목을 오래 지켜온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다.
할머니가 그 그림 앞에 서 계신 걸 봤어요.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웃으셨지요. 내 의자가 벽에도 있네, 하시면서요. 그리고 진짜 의자를 그림 바로 앞에 가져다 놓고 앉으셨어요. 그림 속 의자와 진짜 의자가 나란히 있었어요. 그 모습이 참 따뜻했네요.
이웃들 반응은 조금씩 달랐어요.
동네가 밝아져서 좋다는 분도 계셨고,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늘어 시끄러워질까 걱정하는 분도 계셨지요. 저는 어느 쪽이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할머니가 그 앞에서 웃으시던 모습은 오래 남았어요.
요즘 출근길에 그 벽 앞을 지나면 걸음이 조금 느려져요.
은행나무 아래 의자를 한 번씩 보게 되지요. 할머니가 진짜 의자에 앉아 계시면 인사를 드려요. 회색 벽이었을 땐 없던 인사였네요.
벽에 그려진 의자 하나에도 그 골목을 지켜온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더라고요.
오늘 지나는 골목에서 그런 흔적 하나를 찾아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