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회의에서 팀장님께 크게 혼났어요. 제가 놓친 일 때문에 일정이 밀렸거든요.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어요. 그리고 오후 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요. 나중에 보니 같은 메일 한 통을 세 시간째 열어놓고 한 줄도 못 쓰고 있었네요.
혼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게 돼요.
옆자리 동료가 괜찮냐고 물어도 괜찮다고 웃지요. 점심도 평소처럼 먹으러 가고요. 그런데 속은 계속 오전 회의실에 머물러 있었어요. 팀장님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았지요.
혼난 날 오후는 이상하게 길어요.
시계를 봐도 시간이 잘 안 가지요. 일을 하려 해도 손이 안 움직이고요.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며 숨을 몇 번 쉬었어요. 얼굴이 생각보다 멀쩡해 보여서 오히려 이상했네요.
혼나고 난 오후의 시계는, 평소보다 두 배쯤 느리게 간다.
제가 잘못한 건 맞았어요.
놓친 일이 있었으니까 혼날 만했지요. 그걸 알아서 더 속상했던 것 같아요. 억울하면 화라도 날 텐데, 맞는 말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 무게를 그냥 안고 오후를 보냈네요.
퇴근 무렵 팀장님이 지나가시다 멈추셨어요.
아까 좀 세게 말했다고, 수습은 같이 하자고 하셨지요. 그 짧은 한마디에 오후 내내 굳어 있던 어깨가 풀렸어요. 세 시간째 열어두었던 메일을 그제야 쓸 수 있었네요.
쇼펜하우어는 이미 일어난 일을 계속 곱씹으면 괴로움만 커진다고 했대요.
혼난 일은 이미 지나갔지요. 다시 되돌릴 수 없고요. 그날 저녁엔 그 말을 떠올리며 회의실 장면을 그만 되감기로 했어요.
혼나고 난 오후를 버틴 것만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 한 거겠지요.
퇴근길엔 그 무거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걸어가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