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 화이트보드 구석에 불나방 글씨가 하나 있었거든. "이번엔 진짜 다름." 그렇게.
몇 주 전에 걔가 신나서 적은 거야. 아무도 안 지웠어. 지우면 걔가 서운해할 것 같아서.
근데 그날 불나방이 들어오자마자 그 글씨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지우더라.
불나방 이거 내가 지울게.
그러고 나서 의자에 앉더니 한 마디 했어. "나 틀렸어."
방이 조용해졌지. 불나방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거든.
걔는 늘 다르다고 하는 애잖아. 안 좋은 날에도 곧 괜찮아질 거라고 하는 애.
그런 애가 틀렸다고 하니까 다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더라.
나중에 걔한테 물어봤거든. 그 말 하는 데 얼마나 걸렸냐고.
몇 주 걸렸대. 사실 진작 알았는데 입 밖으로 안 나왔대.
틀렸다고 말하면 그동안 떠든 게 다 바보 같아질 것 같았대. 우리가 비웃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 다르다고 말한 거래. 말하다 보면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칼손 나는 틀린 거 너무 빨리 인정해서 문제인데.
근데 막상 말하니까 아무도 안 비웃었어. 오히려 다들 좀 편해진 얼굴이었거든.
돌부처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고, 칼손은 불나방 어깨를 툭 쳤어.
그다음부터 불나방이 좀 가벼워 보이더라. 몇 주 동안 들고 있던 걸 내려놓은 거잖아.
틀린 걸 숨기는 게 틀린 것보다 더 무거웠던 거라니까.
생각해보면 틀린 거랑 바보인 거는 다른 얘기거든.
그때는 그게 맞아 보여서 그렇게 말한 거잖아. 지나고 보니 아니었던 거고. 그건 누구나 그래.
진짜 문제는 틀린 걸 알면서도 계속 맞다고 하는 거야. 불나방은 그걸 안 한 거고.
돌부처 지운 거 잘했어.
너도 틀렸다는 말이 목에 걸려 있으면 한 번만 해봐. 생각보다 아무도 안 비웃거든.
말하고 나면 가벼워진다니까. 동아리방 화이트보드는 지워도 또 쓸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