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카페 테이블에서 건강검진 얘기가 자주 들려요. 올해 받아야 하는데 아직 못 받았다는 분, 예약이 꽉 차서 연말까지 밀렸다는 분이요. 카운터에서 들으면 이맘때는 다들 미뤄 둔 숙제를 떠올리는 계절 같아요.
아침 일찍 가게를 연 날, 손님 한 분이 들어오셨어요. 어제가 검진이라 전날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드셨대요.
"이게 이틀 만의 첫 커피예요." 잔을 받으시고는 두 손으로 감싸고 한참 향만 맡으셨어요. 한 모금 드시고는 눈을 감으셨어요.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저도 웃음이 났어요.
첫 번째 얘기를 가장 많이 들어요. 다들 연말 직전에 몰리니까요. 그래서 미리 예약하라고 서로 권하시는 걸 자주 들어요.
검진 끝나고 오시는 손님들은 표정이 좀 달라요. 숙제를 하나 끝낸 얼굴이에요. 그리고 대부분 배가 너무 고프시대요.
그래서 이맘때 아침엔 빵을 조금 넉넉히 준비해 둬요. 검진 끝나고 바로 오시는 분들이 커피와 빵을 같이 시키시거든요. 다만 검진 내용에 따라 당분간 조심해야 할 음식이 있을 수 있으니, 안내받은 대로 드시라고 말씀드려요. 저는 그 이상은 잘 몰라요.
손님들 얘기를 들으며 생각한 것들이에요.
첫째, 지금 예약 전화부터 하세요. 날짜는 나중에 바꿀 수 있어도 시작이 제일 어려워요.
둘째, 안내문을 꼼꼼히 읽으세요. 전날 먹으면 안 되는 것, 마시면 안 되는 것이 적혀 있어요. 커피도 그중 하나일 수 있어요.
셋째, 끝나면 스스로에게 맛있는 걸 사 주세요. 그 손님의 첫 커피처럼요.
미뤄 둔 일은 시작하는 순간 반이 끝나요. 오늘 전화 한 통으로 그 반을 끝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