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책을 꺼냈다가 도로 꽂으려던 손님이 계셨습니다. 제목에 "권력"이라는 말이 있어서 좀 꺼려진다고요. 남을 짓밟으라는 얘기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많이들 그렇게 받아들이십니다. 하지만 니체가 이 말로 가리킨 건 조금 다른 쪽이죠.
독일어 원어는 빌레 추어 마흐트(Wille zur Macht)입니다. "힘을 향한 의지"라고 옮기기도 하죠.
여기서 마흐트는 정치권력이나 지위보다 넓은 말입니다. 커지려는 힘, 뻗어 가려는 힘,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힘에 가깝습니다. 니체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이런 움직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 말이 가장 또렷하게 나오는 곳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의 「자기 극복에 대하여」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거기서 권력에의 의지를 보았다고. 섬기는 자의 의지 속에서도 주인이 되려는 의지를 보았다고요. 그러고는 삶이 들려준 비밀을 전합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이다."
핵심은 이 마지막 문장이죠. 권력에의 의지는 남을 누르는 것보다 제 자신을 넘어서는 움직임으로 먼저 나옵니다.
서가에 『권력에의 의지』라는 책이 꽂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니체가 직접 완성한 책이 아닙니다. 그가 정신을 놓은 뒤, 남긴 메모들을 누이 등이 골라 엮어 낸 책이죠.
그래서 이 책만으로 니체를 읽는 건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오래 나왔습니다. 엮은 사람의 뜻이 섞였다는 지적이 있었으니까요. 이 말을 처음 만나신다면 차라투스트라의 그 장부터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권력이라는 번역어가 무겁습니다. 우리말 권력은 지배와 거의 붙어 다니죠. 한 문장씩 떼어 인용됩니다. 앞뒤 맥락이 빠지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엮어 낸 책이 먼저 퍼졌습니다. 니체가 쓴 책보다 그 책의 제목이 더 유명해졌죠.
남을 이기려는 자는 남에게 매인다. 어제의 너를 넘으려는 자만이 제 길 위에 선다.
어제 못 넘은 문턱을 오늘 한 번 더 넘어 봅니다. 남이 아니라 지난 저와 견줍니다. 자라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가끔 물어봅니다. 그 물음 자체가 이 말의 핵심일 겁니다.
그 손님께 「자기 극복에 대하여」가 실린 쪽을 펼쳐 드렸습니다. 한참 읽으시더니 생각과 다르다고 하시더군요. 남이 아니라 자기 얘기라서요.
권력이라는 말이 거북하다면 "넘어서려는 힘"이라고 바꿔 불러도 괜찮겠죠. 저는 그 힘을 남 위에 서는 데가 아니라, 어제의 저를 한 걸음 넘는 데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