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이 혼자 오셔서 어린이실 낮은 의자에 앉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림책 세 권을 다 보고 가시더군요.
처음엔 아이를 기다리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죠. 이런 분이 요즘 부쩍 늘었습니다.
여쭤보면 대답이 몇 갈래로 나오죠.
글자가 많은 게 부담스러워서. 요즘 긴 글이 안 읽힌다는 말씀은 여기서 몇 해째 듣습니다. 그림책은 그 부담이 없죠.
금방 끝나서. 십 분이면 한 권이 끝납니다. 다 읽었다는 감각이 그날 하나는 생기고요.
어릴 때 못 본 걸 지금 봐서.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여럿이었죠. 그 시절에 집에 책이 없었다고요.
제가 이 자리에서 재밌게 보는 건 이 대목입니다. 같은 책을 어른이 읽으면 다른 데서 멈춥니다.
아이는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어른은 그림 구석이나 한 줄짜리 문장에서 오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한테는 안 보이던 어른 쪽 사정이 드러나죠. 부모가 왜 그랬는지, 그 이별이 무엇이었는지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앞서 다시 읽기 얘기에서 적은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책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바뀐 겁니다.
이건 제 판단인데, 오래 남는 그림책은 아이만 겨냥해서 쓰이지 않았습니다.
글이 아주 적어서 읽는 사람이 채워 넣을 자리가 넓거든요. 그 빈자리에 아이는 아이 것을 넣고 어른은 어른 것을 넣습니다. 같은 책이 두 사람에게 다르게 도착하는 구조죠.
한 가지는 걸리죠. 어린이실에 들어오시는 걸 부담스러워하십니다.
낮은 의자에 앉는 게 이상해 보일까 봐, 아이 없이 온 어른이라 오해받을까 봐 그러시죠. 실제로 몇 분은 서서 보시다 가십니다.
관에 따라 어른도 편히 볼 수 있게 자리를 따로 두거나, 그림책 일부를 일반 자료실에도 두는 곳이 늘었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하려고 하죠.
어떤 책은 나이를 먹은 뒤에 읽어야 비로소 다 읽힌다.
세 권을 보고 가셨던 그분은 그 뒤로 자주 오십니다. 이제 앉으실 때 두리번거리지 않으시더군요.
빌려 가셔도 됩니다. 대출 기록에는 다 같은 한 권으로 남습니다. 앞서 만화 얘기에서도 적었지만, 무엇을 읽으시는지로 달라지는 건 여기서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