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와 본문이 서로 어긋난 책이 한 권 들어왔습니다. 목차에 있는 소제목이 본문에는 없고, 본문에 있는 대목이 목차에는 안 잡혀 있더군요.
편집 실수인가 싶어 세 번을 다시 폈습니다. 그런데 문장 자체는 매끄러웠습니다. 매끄러운데 앞뒤가 안 맞는 책은 처음이었죠.
이 얘기를 반납대에서 여러 번 들었죠. 산 책이 이상하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읽히기는 잘 읽히는데 다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요. 어떤 분은 같은 설명이 세 번 나온다고 하셨고, 다른 분은 뉴스에서 그런 책이 늘었다는 얘기를 봤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걸 판정할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목록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보이는 것은 있습니다.
들리는 이유는 단순하죠. 만드는 값이 거의 안 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책 한 권을 내려면 시간과 사람이 들었죠. 그 값이 자연스러운 걸러내기 역할을 했습니다. 값이 사라지면 걸러내기도 같이 사라집니다.
가려낼 방법을 물으시면 저는 솔직히 어렵다고 말씀드립니다. 문장만으로는 거의 못 가리죠.
다만 몇 가지가 반복해서 걸리더군요.
같은 말이 여러 번 나오죠. 표현만 바꿔서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죠. 구체적인 것이 없습니다. 사람 이름, 장소, 날짜, 실제로 겪은 장면이 안 나옵니다. 틀린 사실이 아무렇지 않게 섞입니다. 그리고 그 틀린 부분의 문장이 제일 매끄럽습니다.
마지막이 무섭습니다. 확신에 찬 문장과 근거 있는 문장이 구분이 안 되니까요.
목록을 볼 때 요즘은 순서를 바꿨습니다. 앞표지 말고 뒤쪽을 먼저 봅니다.
참고문헌이 있는지, 있다면 실재하는 책인지. 지은이가 이전에 무엇을 썼는지. 이 두 가지가 비어 있으면 한 번 더 확인합니다. 기계가 아직 잘 못 만드는 것이 출처와 이력이더군요.
잘 쓰인 문장은 지식이 아니다. 지식은 그 문장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식이 된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저는 기계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빼자는 쪽은 아니죠.
도구를 써서 쓴 글은 예전에도 있었죠. 대필도 있었고 자료를 모아 엮은 책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이 있느냐입니다. 틀린 게 나왔을 때 답할 사람이 있으면 그건 책입니다. 없으면 그건 종이 묶음이고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죠. 다만 서가에 꽂기 전에 한 번 더 보는 것, 이상하면 표시해두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죠.
읽는 쪽에서 하실 수 있는 것도 같습니다. 다 읽고 나서 뭐가 남았는지 한 번 물어보시면 됩니다. 매끄럽게 읽혔는데 아무것도 안 남았다면, 그건 내가 못 읽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무엇을 읽을지 고르는 힘은 결국 그 물음에서 나옵니다. 그 물음만은 기계가 대신 못 해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