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다르게 전해진 적이 있습니다. 부담스러웠다는 말을 나중에 건너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저는 뭘 건네기 전에 한 번 손을 멈추게 됐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억울할 것 같은데 저는 부끄러움이 먼저 오더군요.
내가 눈치가 없었나, 상대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나섰나 싶은 겁니다. 마음을 낸 것 자체가 잘못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는걸요.
선의는 건네는 순간 내 손을 떠난다. 그다음에 그것이 무엇이 되는지는 받은 사람의 사정에 달려 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이렇더라고요.
제가 낸 건 마음인데 상대에게 도착한 건 그 마음의 모양입니다. 시점이라든가 방식이라든가 하는 것들이요. 마음은 좋았는데 모양이 그 사람 사정과 안 맞으면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오해받았다고 해서 마음이 나빴던 건 아닌 셈이군요.
이유를 알아도 몸은 따로 놉니다.
그 뒤로는 뭘 하려다가 한 번 멈춰요. 이게 부담이 되려나, 지금이 맞나 하면서요. 그러다 보면 시기를 놓치고, 놓치고 나면 안 하게 됩니다. 위축이라는 게 대개 이런 식으로 자리를 잡더라고요.
한동안은 안 하는 게 답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 하는 쪽으로 가면 편하기는 한데 사람이 좀 얇아져요. 아무한테도 폐를 안 끼치는 대신 아무하고도 안 가까워지는 자리가 되는걸요. 저는 그 자리가 그렇게 좋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크기를 줄입니다.
크게 마음 쓰는 대신 작게 하고, 하기 전에 한 번 물어봐요. 필요하시냐고 짧게 여쭤보는 정도로요. 물어보는 게 정 없어 보일까 걱정했는데 실제로는 그쪽이 덜 부담스럽다고들 하시더군요.
마음의 크기는 그대로 두고 모양만 바꾼 셈입니다.
한 번 오해받은 일은 오래 남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요.
다만 위축된 건 마음이 아니라 손이에요. 손은 몇 번 다시 써보면 풀립니다. 작게 몇 번 하다 보면 어느새 예전 정도로는 돌아오더라고요.
오늘 마음 쓴 일이 다르게 전해져서 손이 멈추셨다면, 그 마음까지 접지는 마셨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