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안 일어나더군요.
전 같으면 하루가 흔들렸을 이름인데요. 저는 그날 좀 이상한 기분으로 앉아 있었네요.
미워하는 동안에는 이게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없어지고 나니까 후련하지가 않더라고요. 뭔가 빠져나간 자리가 있는 겁니다. 이런 걸 예상하지는 못했네요.
오래 미워한 대상은 우리 안에서 하나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 자리는 미움이 떠나도 한동안 비어 있다.
생각해보면 그 미움이 뭔가를 하고 있었어요.
억울한 걸 억울하다고 붙잡아주고 있었고, 그 시절의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편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게 사라지면 그 편도 같이 없어지는 셈이군요.
그러니 허전한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걸 용서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습니다.
제가 뭘 결심한 적이 없거든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빠진 겁니다. 용서는 하는 것이고 이건 그냥 일어난 일인걸요. 저는 그 차이를 좀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미움이 흐려졌다고 그 일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있었던 건 있었던 겁니다. 다만 그걸 매일 들고 다니지 않게 된 것뿐이지요. 상자에 넣어서 어딘가에 두는 정도로 바뀐 셈입니다.
빈자리가 생기면 뭐라도 채우고 싶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 일을 다시 꺼내서 온도를 올리거나요.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비어 있는 채로 좀 두면 시간이 알아서 다른 걸 놓아주더라고요.
그렇게 미워하던 게 아무렇지 않아지면 자기가 무정한가 싶어지기도 하지요.
그건 무정한 게 아니라 그 마음이 할 일을 다 한 겁니다. 오래 채워져 있던 자리라 잠깐 비어 보이는 것뿐인걸요. 저는 요즘 그 자리를 그냥 두고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