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면 하는 순서가 매번 똑같거든. 나는 이것도 세봤어.
가방 놓고, 손 씻고, 물 마시고, 폰 보고. 이 넷이 늘 이 순서야.
근데 안 좋은 날에는 순서가 바뀌는 게 아니더라. 아예 몇 개를 건너뛰어.
가방을 안 놓고 그냥 앉아 있거나, 손도 안 씻고 폰부터 보거나. 그런 날이 있다니까.
순서가 무너진 게 아니라 짧아진 거잖아. 나는 그게 좀 정확한 표시더라.
칼손 저는 신발도 안 벗을 때 있어요.
이거 방에서 본 거랑 똑같더라. 안 좋은 애가 가방을 안 벗고 문 앞 의자에 앉는다고 했잖아.
집에서는 내가 그러고 있었던 거고. 남한테서 본 걸 나한테서는 못 보고 있었던 거라니까.
세보기 전에는 몰랐어. 그냥 피곤한 날인 줄 알았고.
그래서 요새는 안 좋은 날일수록 순서를 지키려고 하거든. 일부러 손 씻고 물 마시고.
그렇게 하면 좀 낫더라. 몸이 순서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거라도 붙잡는 거잖아.
방에서 조용한 날에도 하던 얘기를 이어가는 거랑 같은 거고. 평소대로 하는 게 짧게 만드는 방법이라니까.
돌부처 하던 걸 하면 되지.
그러고 나서 동생 순서도 보게 되더라. 동생도 넷이 정해져 있어.
건너뛰는 날이 보이면 나는 아무 말 안 하고 물 한 컵 따라놔. 물어보지는 않고.
아빠가 문 앞에 놓고 가시는 거랑 같은 거잖아. 말 없이 하는 거니까.
그리고 건너뛴 게 셋 이상인 날이 이어지면 그때는 나도 좀 봐야 되는 거고. 그건 표시니까.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내 상태도 잘 모르거든. 물어봐도 모르겠고.
근데 순서는 셀 수 있잖아. 넷 중에 몇 개 했는지만 보면 되니까.
그거 하나로 오늘이 어땠는지가 나오더라니까. 나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정확해.